철학으로 풀어보는 부자와 재벌 문제 - 공리주의와 롤스 철학
총 소득이 중요한 공리주의, 세율 인하·규제 완화 주장
최근 부자 증세·재벌 규제는 극빈자 고려 롤스 철학에 바탕
경제 규모를 극대화하되 이득을 국민과 나눠야 이상적… 재벌이 사회 환원 등 나서야
최근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적 갈등의 원인은 무엇일까?
얼핏 보면,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간의 갈등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시장주의와 반(反)시장주의의 갈등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갈등의 근간에는 역사적으로 지속돼 온,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으로 대표되는 공리주의 철학과 존 롤스(John Rawls)의 철학 간의 대립이 있다.
벤담은 "정부는 공동체 구성원인 국민들의 행복의 총합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만약에 국민들의 행복이 그들의 소득 수준과 비례한다면, 벤담의 철학에 따를 때 가장 바람직한 정책은 국민 전체의 소득을 극대화하는 정책이 된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공동체 전체의 파이(pie)를 극대화하는 정책이 가장 바람직한 정책이 되는 것이다.
공리주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전체 파이의 크기일 뿐, 그 파이를 어떻게 나눠 갖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반면, 롤스(Rawls)는 "사회적으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후생(well-being)을 극대화하고 기회의 평등을 확보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롤스에 따르면 공동체 전체의 파이 크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가장 못사는 사람의 소득 수준이 얼마인가만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롤스의 기준에 의하면, 정책 결정자는 그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의 살림을 돌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부자 증세 바람직한가?
작년 말 국회에서는 소득세의 최고세율을 35%에서 38%로 높이는 법안이 통과됐다.
최근 10여년간 소득세율 인하 추세와는 반대되는 현상이다.
현재 22%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이에 대한 논란도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세율 인하 주장은 공리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세율을 낮춰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하면 사회 전체의 부(富)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세율을 낮출 경우 '가진 자'들이 더 많은 혜택을 보게 되는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경제 성장이 중요할 뿐이다.
반면, '가진 자'에 대한 세율 인상 주장은 롤스의 기준과 관련이 많다.
적어도 중단기적으로 세수를 증가시킬 수 있어 서민층 복지 혜택을 늘릴 수 있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정책이야말로 최선의
정책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롤스의 기준은 어려운 사람을 배려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만, 장기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국가 전체의 파이를 극대화하는 선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선택이 계속될 경우 후손들이 적은 크기의 파이를 물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벌 규제 바람직한가?
누군가 재벌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규제 완화에 따른 경제 전체적인 플러스 효과가 마이너스 효과보다 크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했다면, 그러한 주장은 암묵적으로 공리주의적 가치 판단을 앞세운 것이다.
경제 전체적으로 규제 완화의 효과가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만을 따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전체의 파이를 아무리 크게 하더라도 경제적 약자(弱者)를 더욱 약자로 만드는 것은 롤스의 기준에 따르면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예를 들어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해 경제적 약자가 더 약자가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와 같은 규제 완화는 바람직
하지 않을 수 있다.
◇무엇이 사회적 최선인가?
앞선 두 가지 사례에서 보듯이 사회적 최선에 대한 판단은 최선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공리주의와 롤스의 대립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사회적 최선은 없는 것인가?
이상적으로는 존재한다.
공리주의적인 접근을 통해 경제 전체의 파이를 극대화하는 선택을 하되, 이를 통해 얻어지는 이득을 모든 국민이 나눠 갖는 것이 그것이다.
재벌 규제를 예로 들면, 규제 완화를 통해 경제 전체의 파이를 극대화하되, 그 이득을 모든 국민이 나누어 갖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는 재벌들이 규제 완화를 통해 자신들이 얻은 이득을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국민들과 나누어 가질 때에만 가능하다.
조금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재벌들과 부자들이 그동안 이 사회에서 얻어 온 특혜들을 깨닫고, 이를 사회에 돌려주는 일에 앞장설 때에만 최선은 달성될 수 있다.
◇재벌들과 부자들은 과연 자신들의 도덕적 의무를 다하고 있나?
안타깝게도 대답은 '아니오'다. 2009년 재벌닷컴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110개 대기업의 순수 사회기부금은 이들 기업 당기
순이익의 2.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 총수와 부자들의 개인적 기부도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다.
최근에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경우도 흔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재벌들이 소모성 자재를 계열회사를 통해 공급받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중소 광고회사로부터 제공받던 광고를 갑자기 끊고, 오너 아들이나 딸이 차린 회사에 광고를 맡기는 재벌들도 있다.
그룹의 물류를 맡아왔던 중소기업과의 거래를 끊고, 오너 아들이나 딸이 차린 회사에 이를 맡기는 경우도 있다.
돈이 된다 싶으면 그룹 총수의 가족들이 나서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진출하는 일도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와인은 물론 물티슈, 생리대 수입에까지 나섰다고 하고, 심지어 레스토랑, 빵집, 분식집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고 한다.
◇공리주의와 효율성만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 사회의 재벌들과 부자들은 공리주의를 근거로, 그리고 효율성을 이유로 자신들을 위한 정책이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나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공리주의만이 전부는 아니다.
효율성만이 전부도 아니다. 롤스의 주장도 있다.
롤스의 기준에 따르면, 효율성보다 공평성이 중요할 수 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주장을 하기 이전에 자신들이 도덕적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를 먼저 되돌아 보아야 한다.
재벌들과 부자들이 자신들의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않는 한, 효율성과 무관하게 그들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높아지게 돼 있다. 여기에는 정부에 의한 다양한 사후적 간섭도 포함된다. 비(非)효율성을 감수하겠다고 생각하면, 정부가 기업들을 규제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것이 재벌들과 부자들의 반성이 필요한 이유다.
공리주의에 따른다면 유능한 자녀를 선택,
롤스 철학에 따른다면 유능하지 못한 자녀 선택
부모가 매우 가난해서 두 자녀 가운데 한 명밖에 대학에 보내지 못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유능한 자녀를 대학에 보낼 것인가, 아니면 유능하지 못한 자녀를 대학에 보낼 것인가, 아니면 아무도 대학에 보내지 않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유능한 자녀를 대학에 보낼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각자가 갖고 있는 철학적 기준에 따라 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기준이 바로 공리주의와 롤스에 의한 기준이다.
먼저 공리주의에 따르면, 가문이 융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가족 전체의 파이(pie)를 최대로 하는 선택이 최선이 됨을 의미한다. 즉, 자녀들의 소득의 합계가 최대가 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최선이 된다. 만약에 첫째가 유능하다면, 첫째를 대학에 보내는 것이 최선이 된다. 유능하지 못한 둘째를 대학에 보내면 첫째를 대학에 보낼 때보다 자녀 소득의 합계가 줄기 때문에 나쁜 선택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롤스의 기준에 따르면 못사는 자녀가 없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둘째가 유능하지 못하다면 오히려 유능하지 못한 둘째를 대학에 보내야 한다. 대학이라도 가야 못난 둘째가 그나마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못난 둘째가 대학마저 가지 못하게 되면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데, 부모로서는 차마 눈뜨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똑똑한 첫째가 대학에 가지 못해 가문이 일어서지는 못했지만, 둘째가 못살게 되는 일은 막았으니 부모 입장에선 다행일 수 있다.
이 두 가지 기준 이외에도 현실적으로는 다른 기준들도 있을 수 있다.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기준이 있을 수도 있다. 이에 따르면, 두 자녀를 모두 대학에 보낼 수 없으면 아무도 대학에 보내지 말아야 한다. 재산의 금액과 상관없이 맏아들을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기준도 있을 수 있다. 이는 '유교적 장자(長子) 상속'이란 전통 정서와 맞물려 맏아들을 우선시하는 경우이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유진수 (숙명여대 경제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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