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지혜

전통 장례절차

호사도요 2013. 6. 19. 10:33

-전통 장례절차-

초종: 초종(初終)이란,

보통 초상(初喪)이라는 말을 예문(禮文)에서 쓰는 말입니다.
그본래의뜻은 운명(殞命)에서 졸곡(卒哭)가지를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할때에는운명에서 전(奠)까지를의미합니다.

천거정침(遷居正寢)

환자의 병세가 위급해 도저히 회춘(回春)할 가능성이 없으면 환자를 정침(안방)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집 안팎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환자를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힙니다.

환자의 머리는 동쪽을 향하게 하여 북쪽 문 밑에 편안하 게 모십니다.

네 사람이 조용한 가운데 환자의 팔과 다리를 주무릅니다.

(천거정침(遷居正寢)은 가주(家主)에만 해당되고 가주이외의사람은 자기가거처하던방으로 옮깁니다.

유언(遺言)

환자의 병세가 위급한 상태에 빠지면 가족들은 침착한 태도로 주위를 정돈하고 운명을 기다립니다.

이때 병자에게 물어볼 말이 있으면, 병자가 대답하기 쉽도록 내용을 간략하게 묻고 그 대답을 기록을 합니다. 병자가 자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평소에 미진한 일이나 사후에라도 실행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훈계나 교훈, 그리고 재산 분배에 대한 유언일 것입니다.

유언은 원래 자필로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시간적인 여유나 기력이 없을 때는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사람이 대리로 써도 됩니다. 유언은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는 사람의 마지막 귀중한 말이므로 자손들 친지들은 마땅히 그에 따라야 합니다.

임종(臨終)

임종(臨終)이란 운명(殞命)이라고도 하는데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을 말합니다.

자손들이나 친지들은 환자의운명을 정중하고경건하게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남자의 임종은 여자가 지키지 않으며, 여자의 임종은 남자가 지키지 않습니 다. 그러나, 자손일 경우에는 이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속광

환자의 손과 발을 잡고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을 분명하게 알기 위해, 햇솜을 환자의 코 밑에 대놓고 환자의 숨을 그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속광 이라고 합니다.

솜이 움직이지 않으면 완전히 숨을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환자가 완전히 숨을 멈추지 않았을 때 곡성이 요란하면, 운명하는 이가 순간이나마 마음이 불안하고 정신이 혼란할까 염려되므로 가족은 울음을 참고 조용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속광합니다.

수시(收屍)
숨이 끊어지면 눈을 감기고 준비한 햇솜으로 입, 코, 귀를 막은 후에 머리를 높여 반듯하게 굅니다.
가족들은 자연 시신을 붙들고 울게 되는데, 이때 친척 가운데 초종의 범절에 익숙한 사람이 가족의 울음을 멈추게 하고, 시신이 굳기 전에 손과 발을 주물러서 펴게 하고 수시(收屍)를 합니다.
수시는 문을 닫고 하고, 시체를 안치한 방에는 불기운을 없애고 바닥에 짚을 깝니다. 백지로 시신의 얼굴을 덮고, 백지나 베로 양쪽 어깨를 반듯하게 묶습니다.

그 다음 턱을 괴고, 양손을 배 위에 올려 놓는데 남자는 왼손을,여자는 오른손을 위로 합니다.

백지 또는 베로 시신의 자세가 어그러지지 않게 팔과 다리를 묶습니다.

그런 다음 시신을 시상(屍床) 위에 옮겨 누이고 홑이불로 덮 은 후에 병풍이나 가리개로 가립니다.

그 앞에 고인의 영정을 모시고 양쪽에 촛불을 밝힌 다음, 중앙에 향을 피우고 곡을 합니다.
(이 수시절차를 소홀히하면 손발과몸이 뒤틀리고오그라드는 경우가 생기므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고복(皐復)

고복(皐復)을 복(復), 초혼(招魂), 또는 "혼을 부른다"라고도 합니다.

죽은 사람의 흐트러진 혼을 불러 돌아오게 한다는 뜻으로, 시신을 보지

않은 사람이 지붕위로 올라가는데 남상(男喪)일 때는 남자가 올라가고,

여상(女喪)일 때는 여자가 죽은 사람이 입던 속적삼을 들고 올라갑니다.
동쪽 끝으로부터 지붕의 중앙에 올라가서, 왼손으로 그 옷의 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옷의 허리를 잡고 북쪽을 향해 휘두릅니다.

이때 크고 긴 목소리로 "00도 00군 00면 00리 학생 000공(公) 복 복 복!" 하고 외친다.

죽은 자가 관작(官爵)이 있으면 "00관(官) 0공(公)"이라 하고, 죽은 자가 여자일 때는 남편의 관작을 좇아 "00부인 0씨"라 하고, 관작이 없으면 "유인(孺人) 0 0 씨"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고복할 때는 상주 이하 모든 가족이 울음(곡)을 멈추어야 한다.
이것은 떠나려는 혼이 다시 시신으로 돌아와 되살아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살아나지 않으면 정말로 죽은 것이 확인되는 것입니다.

고복한 후의 옷[復衣]은 지붕 위에 그대로 놓거나 시체의 가슴 위에 올려 놓는 등, 각 지방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또 지방에 따라서는 주소와 관작과 성을 말하지 않고 "복!복!복!" 하기도 하고, "돌아보고 옷이나 가지고 가시오!"라고 하기도 합니다.

죽음이 확인되고 사잣밥을 놓을 때에는 먼 하늘을 쳐다보고 고인을 부르며 땅을 치고 곡을 합니다.

초혼의 예)
사바세계 해동 대한민국 0 0 (도.시) 0 0 (군.구) 0 0 (읍.면.동)0 0 번지 0 0호 (학생.유인)본관 0 0 0(공.씨)0 0세 0 0년 0 0 월0 0일 0 0시0 0분 별세 복! 복!복! "

사잣밥

고복을 한 다음 밥상에 밥 세 그릇과 술 석 잔과 백지 한 권, 북어 세 마리, 짚신 세 켤레, 약간의 동전을 얹어놓고 촛불을 켜서 뜰 아래나 대문 밖에 차려놓는데, 이것을 사잣밥이라 합니다.

염라대왕이 사자(使者)를 시켜 사람의 목숨을 거두게 하는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에 그 저승사자를 대접해 편안히 모셔가게 해달라는 뜻입니다.

발상과 상주

고복이 끝나면 아들,딸,며느리,즉 자손들이 머리를 풀고 곡을 하며 옷을

갈아입는데, 남자는 심의(深衣)를 입고 섶을 여미지 않으며, 여자는 흰

옷으로 갈아입고 모두 맨발로 신을 신지 않는다.

이와 같이 상제의 모습을 갖추고 초상 난 것을 밖에 알리는 것을 발상

(發喪)이라 합니다.

발상과 동시에 상중(喪中), 기중(忌中) 또는 상가(喪家)라고 써서 문밖

또는 길목에 붙입니다.

이렇게 초상이 나면 예제(禮制)에 따라 상주(喪主), 주부(主婦), 호상

(護喪), 사서(司書), 사화(司貨)를 정합니다.

상주는 상사(喪事)의 중심이 되는 상인(喪人)을 가리키는데, 죽은 사람의맏아들이 상주가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맏아들이 없고 맏손자가 있을 때는 작은 아들이 있어도 맏손자가 상주가 되고, 상주가 된 장손을 승중(承重) 또는 승중손(承重孫)이라 합니다.

주부는 여자 상주로서 아내가 대신합니다. 그리고 죽은 자의 아버지가 살아 있으면 장성한 아들이 있더라도 아버지가 주상이 되며, 아내가 죽었을 때는 남편이 주상이 됩니다.

호상과 사서, 사화

호상이란 발상이 끝나면 상주를 도와서 상사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으로서, 상사를 알리는 일에서부터 치상(治喪)의 범절까지를 주관합니다.

그러기에 호상은 상가의 모든 것을 잘 아는 친척 또는 친구 가운데에서 상례에 밝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선임합니다. 사서는 상사에 관계되는 모든 문서를 맡은 자이며,사화는 장재(掌財)라고도 하며 장례를 치르는 데 있어 물품과 금전의 출납을 관리 담당하는데, 친척이나 친지 중에서 선임합니다. 사화가 일을 진행시킬 때는 공책을 세 권을 만들어 놓고,한 권에는 물품이나 금전의 출납을 기록하고, 다음 한 권에는 조문객의 부의금을 기록하는 책으로서 그 책의 이름을 부상(父喪)일 때는 조객록(弔客錄)이라 쓰고, 모상(母喪)일 때는 조위록(弔慰錄)이라고 씁니다.

전(奠)
전(奠)이란 고인이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섬기기 위해 술,과일 등을 차려 놓은 것으로, 집사(執事)가 포(脯)와 식혜(食醯),과일 등을 탁자위에 놓으면 축관(祝官)이 손과 술잔을 씻고 술을 따라 올립니다. 술은 잔에 가득 차게 부어 시신의 오른쪽 어깨 가까운 곳에 놓습니다. 이것을 염습이 끝날 때까지 날마다 한 번씩 행합니다. 집사와 축관이 전을 올리는 이유는 주상은 슬프고 애통하므로 자신이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집사가 대행하는 것입니다. 단 절은 하지 않습니다.
복인(服人)
복인(服人)의 범위는 고인의 8촌 이내의 친족으로 합니다. 복인들 중 남자 상제들은 흰 두루마기를 입되 부상이면 왼쪽 소매, 모상이면 오른쪽 소매에 팔을 꿰지 않고 소매를 빼서 뒤로 넘깁니다. 그리고 앞섶을 여미지 않은 채 안옷고름으로 조금 매기만 합니다. 여자 상제들은 머리를 풀고 흰 옷을 입습니다.
치관(治棺)

호상이 목수나 관장(棺匠)을 시켜 나무를 골라 관을 만들게 합니다. 나무 중에는 유삼(油衫)이 제일이고 잣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그리고 오동나무순입니다.

관재(棺材)는 천판(天板), 지판(地板)을 한 장씩, 사방판(四方板) 네 장을 준비합니다.

두께는 세 치(약9센티)나 두 치반(약 7.5센티)으로 하며, 높이와 길이는 시신의 길이와 부피에 맞도록 합니다. 칠성판은 염습할 때 시신 밑에 까는 널빤지로 두께가 다섯 푼이라 합니다. 옛날에는 부모가 회갑이 지나면 이미 관재를 준비하고 옷칠을 하여 소중히 보관했다가 사용하는 예가 많았습니다.

부고(訃告)
부고(訃告)는 호상이 상주와 의논해 친척과 친지에게 신속하게 전합니다. 부고장은 백지에 붓글씨로 쓰는 것이 정중하지만 장수가 많을 때는 인쇄로 하고 봉투만 붓글씨로 쓰는 것이 좋습니다. 부고를 알리는 방법으로는 전인 부고(專人訃告 : 직접 사람이 전하는 부고), 우편 부고, 신문 부고가 있습니다. 사후의 칭호는 부고를 보내는 것이므로 상주의 아버지면 대인(大人),어머니면 대부인(大夫人),할아버지면 왕대인(王大人),할머니면 왕대부인(王大夫人),아내일 때는 망실(亡室) 또는 합부인(閤夫人),동생일 때는 망제(亡弟)라 씁니다.
습은 시체를 닦고 수의를 입힌뒤 염포로 묶는 절차로서 염습 또는 습렴이라 합니다. 먼저, 향나무 삶은 물이나 쑥을 삶은 물로 시신을 정하게 씻기고 나서 수건을 닦고 머리를 빗질하고손톱과 발톱을 깍아 주머니에 넣습니다. 이것이 끝나면 시신을 침상에 눕히고 수의를 입히는데, 옷은 모두 오른쪽으로 여밉니다.

다음으로 습전이라 하여 제물을 올리고 주인 이하 모두가 자리에서 곡을 합니다. 이어 시신의 입 속에 구슬과 쌀을 물려 주는데 이를 반함이라 합니다. 염습의 절차가 끝나면 사자는 이불로 시신을 덮습니다. 이를 졸습이라 합니다. 이때 화톳불을 피우고 영좌를 꾸밉니다. 교의에는혼백을 만들어 얹고 명정도 만들어 세워 놓습니다. 이 의식이 끝나면 친족 친지들이 들어가서 곡을합니다.
소렴
소렴이란 시신을 옷과 이불로 싸는 것을 말합니다. 죽은 다음날 아침 날이 밝으면 집사자는 소렴에 쓸 옷과 이불을 준비해 놓습니다. 머리를 묶을 삼끈과 베끈을 준비하고,소렴상을 마련하고 시신을 묶을 베와 이불과 옷도 준비합니다. 이것이 끝나면 제물을 올린 다음에 소렴을 시작합니다. 우선 시신을 소렴상에 눕히고 옷을 입히는데,옷은 좋은 것으로 골라서 입히고 이불은 겹으로 합니다.
옷을 입힐 때는 왼편으로부터 여미되 고름은 매지 않으며, 손은 악수로 싸매고 면목으로 눈을 가리고 폭건과 두건을 씌웁니다. 이불로 고르게 싼다음, 장포 두끝을 찢어 각각 매고 속포로 묶습니다. 이때 속포 한쪽 끝을 세 갈래로 찢어서 아래로부터 차례로 묶어 올라갑니다.
대렴
대렴이란 소렴이 끝난뒤 시신을 입관하는 의식으로서 소렴을 한 이튿날, 즉 죽은지 사흘째되는날에 합니다. 날이 밝으면 집사자는 탁자를 가져다가 방 동쪽에 놓고, 옷 한벌과 이불둘을 준비합니다. 시신을 맬때는 세로는 한폭을 셋으로 쪼개서 소렴 때와 같이 하고 가로는 두 폭을 씁니다. 다음으로 관을 들여다가 방 서쪽에 놓고 입관하는데 이때 제물을 올리는 것은 소렴때와 같이 합니다. 이때 자손과 부녀들은 손을 씻습니다.
대렴금으로 시신을 싸되 먼저 발을 가린 다음 머리를 가리고 또 왼쪽을 가린 뒤에 오른쪽을 가립니다. 장포와 횡포순으로 맨 다음 시신을 들어서 관 속에 넣습니다. 생시에 빠진 이나 먼저 깎은 손톱발톱을 담은 주머니를 관 귀퉁이에 넣습니다. 이것이 끝나면 병풍이나 포장으로 관을 가린 뒤 관 동쪽에 영상을 마련하고 제물을 올립니다.
성복
대렴이 끝난 이튿날, 죽은 지 나흘째 되는 날 하는 의식입니다. 날이 밝으면 오복의 사람들이 각각 그 복을 입고, 제 자리에 나간 후에 조곡을 하고 서로 조상을 합니다. <상례비요>에 보면 사람들이 차마 그 부모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 없어서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대렴을 하고 그 날로 성복을 하는 수가 간혹있는데 이는예에 어긋난다고 씌어 있습니다. 조상을 할대는 오복의 차례대로 행하는데, 여러 자손들은 조부와 아버지 앞에 가서 끓어 앉아 슬피 운 다음 조모 및 어머니 앞에 가서 또 이와 같이 합니다. 여자는 먼저 조모와 어머니 앞에 가서 곡한 다음에 조부 및 아버지 앞에 가서 남자의 의식과 같이 행합니다.
상복 입기
상복을 입는 절차를 성복이라 합니다. 대렴한 그 이튿날로서 죽 은지 4일째 되는 날입니다. 차마 부모가 죽은 것으로 여길수가 없어서 급히 성복을 하지 않고 4일이 된 후에 성복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대렴과 성복을 같은 날 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3일이 지난 후 대렴을 하고 바로 그날 성복을 하니 이것은 본래의 예(禮)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대렴한 이튿날 날이 밝을 적에 오복(五服)을 입을 사람들이 각자 그 복을 입고 들어가서 제자리로 간 후 아침의 곡을 하고 조상합니다. 상복은 머리를 걷고 단정히 상관(喪冠)을 쓰되, 효건(孝巾)으로 받들고, 그 위에 수질(首질)을 맵니다.

치마를 입고, 교(絞)와 요질(腰姪)을 띠며 짚신을 신고 기년복(朞年服) 이상은 모두 지팡이를 짚습니다. 부인은 머리를 걷었던 것을 버리고 관(冠)을 쓰고 최상(최裳)을 입으며, 요질을 띠고 짚신을 신으며 지팡이를 짚습니다.

어린이도 성인과 같은데 다만 관과 수질이 없을 뿐입니다. 남자는 동쪽에 서쪽을 향해 자리를 잡고 각각 차례로 복을 입으며 모두 슬피 조상합니다. 초상(初喪)때에는 성복 이전에는 조례(弔禮)와 배례(拜禮)가 없습니다. 요즘 들어 아침에 전을 올리고 나서 성복하기 전에 절을 하곤 하는데 이것은 예의에 어긋납니다.

상관(喪冠) : 두꺼운 종이로 심을 넣는데 폭은 5인치 2푼반을 베로 싸되, 베의 샛수는 최에 비하여 조금 가는 것으로 합니다.삼년상은 다듬어 빨지 않는 것, 기년(朞年) 이하는 빨아서 다듬어 둔 것으로 세 줄을 접습니다.
효건(孝巾) : 관을 받드는 것을 말합니다.

수질 : 건 위에 쓰는 것으로서 삼으로 두가닥을 서로 꽈서 만듭니다. 꽈놓은 둘레가 참최는 9인치 재최는 7치2푼, 대공에는 5치7푼, 소공에는 4치6푼, 시마에는 3치5푼으로 합니다.

치마 : 앞폭 여섯 폭, 뒤폭도 여섯 폭으로 앞은 웃옷 앞섶과 같이 떠놓습니다.
요질(腰姪) : 교대 위에 매는 것으로 허리띠를 말함. 짚에 삼을 섞어서 굵은 동아줄같이 만듦니다. 그 굵기가 참최는 7치2푼, 재최에는 5치7푼, 대공에는 4치6푼, 소공에는 3치5푼, 시마에는 2치8푼으로 합니다.

짚신 : 참최에는 짚신, 재최에는 삼신(삼신), 소공이하는 보통신을 신습니다.
지팡이 : 대나무로 만드는데 높이는 가슴에 닿게 하고, 재최에는 오동나무를 깎아서 네모 버드나무로 대용해도 무방합니다.

복제도(服制度)는 참최에 3년입니다. 그 정복(正服)은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입습니다. 적손(適孫)이 아버지가 죽어서 할아버지나 증조.고조를 위하여 승중(承重)을 하는 자와 비록 아버지가 적자(適子)가 되어서 후계가 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승중은 되었으나 3년을 못 입는 까닭에는 네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 적자가 폐질 (廢疾:못된병)이 있어서 종묘(宗廟)에 주장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
둘째 : 가계에 전통을 잇는 것을 전하는데 정실(正室)의 몸이 아닌 것.
다시 말해서 서손(庶孫)이 후계가 된 사람.
세째 : 몸이 정실이 아닌 것. 즉 서자를 세워서 후계를 삼았을 때.
네째 : 정실이되 몸이 아닌것. 즉 적손을 세워 후계를 삼은 경우 등입니다.

이상은 정복을 말한 것이고 의복은 며느리가 시부모를 위하는것과 남편이 숭중되었을 때에 따라서 입는 복들도 이와 같습니다. 또한 그 아들이 아버지를 위하여 복을 입다가 소상전에 죽으면 다시 그 아들이 소상 때부터 복을 받아 입습니다. 이것을 대복(代服)이라 합니다.
물론 이것은 가례에는 실려 있지 않으나 의리에 속한 일이며, 초상에는 하루도 주상(主喪)이 없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병이 있어 집상(執喪)을 하지 못하거나 상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죽으면 그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복을 입는 것은 부득이한 일입니다. 참최의 상복은 석세베(三升布)로 만듭니다. 이것을 참(斬)이라고 이름지은 것은 몹시 애통하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또 최(衰) 역시 효자의 애통하는 뜻을 밝힌 것이라 합니다. 삼년복을 입는 것은 실로 잠깐 사이의 일이지만, 너무 짧다고 계속해 입다 보면 한이 없겠으므로 예경▶ 칙령(禮經勅令:예에 관한 글을 나라에서 만든 칙령)으로 적당히 제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3년이란 위로는 하늘을 본받고 아래로는 땅에서 법을 취하며, 가운데로 사람에게서 취한 것이라고 합니다.

재최도 3년입니다.
재최는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서 입는 복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계신데 어머니가 죽었거나 딸이 시집을 갔으면 어머니를 위해서 3년을 입지 못합니다. 시집 갔다 돌아와 집에 있는 여자나 서자가 그 어머니를 위해 입는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맏손자(適孫)가 그 아버지가 죽었을 때 조모. 증조모. 고조모를 위해서 승중한 자와 어머니가 적자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복에 있어서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위해서와 남편의 승중에 따라서 입는 복과 남편의 계모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첩의 아들이 적모(嫡母)를 위해서도 같고, 계모가 장자를 위해서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가 죽으면 어머니를 위하는 것이나,아버지가 죽은지 3년 안에 어머니가 죽으면 그대로 기년(朞年)만 복을 입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 빈소를 모시지 않고 있다가 어머니가 죽으면 삼년복을 입어야 합니다.

장기(杖朞) : 막대기를 짚고 기년을 입습니다.
그 정복(正服:齊衰)은 맏손자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가 계신데 할머니를 위한 복입니다. 승중했을 때는 증조모.고조모의 경우도 같습니다. 또한 아버지가 계신 때 어머니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계모. 적모나 자모에게도 의복을 입습니다. 또한 시집간 어머니와 쫓겨난 어머니를 위하는 것은 아버지의 뒤이면 복을 입습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가 계시는데 시어머니를 위해서도 의복을 입습니다.

부장기(막대기를 짚지 않고 기년을 입습니다.) 그 정복은 조부모. 백숙부모. 형제. 중자(衆子)를 위해서 입는 복입니다. 누이가 시집을 가지 않은 경우나 시집을 갔다가 쫓겨온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또 시집을 갔지만 남편이나 자식이 없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여자가 남편 형제의 아들을 위해서,첩이 큰 부인을 위해서, 남편의 여러 아들을 위해서,시부모가 맏며느리(장자로 斬衰에 해당한 이의 아내)를 뒤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부모가 계시는데 양부모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衆子:맏아들 외의 모든 아들)

다섯 달(五月)복을 입는다.
그 정복은 증조부모를 위해서 입습니다. 의복으로는 계증조모(繼曾祖母)를 위해 입습니다.

석 달(三月)복을 입는다.
정복은 고조부모를 위해서 입습니다. 의복은 계고조모를 위해서 입습니다.

대공(大功)에는 아홉 달(九月)입니다.
그 정복은 종형제와 종자매를 위해 입는 것입니다. 즉 백부나 숙부의 아들. 딸을 말합니다. 중손의 남녀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손녀가 시집갔다가 쫓겨왔거나 서손에 승중이 된 이도 같습니다. 적자가는 데 장손을 위하는 것과 지자(支子)가 적손을 위하는 것도 같습니다.

大功.小功 : 공(功)은 베(布)를 다듬는데 있어서의 공적을 나타내므로 자세하고 거친것을 말합니다.

소공(小功)에는 다섯 달(五月)입니다.
그 정복은 종조부와 종조모, 형제의 손자, 종형제의 아들, 재종형제의 경우에 입는 복입니다. 외조부모와 외숙, 생질(甥姪)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복으로는 종조모와 남편의 형제. 손자. 남편 종형제의 아들을 위해서 입습니다. 형제의 아내와 남편의 형제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부와 사부끼리도 소공복을 입습니다.

질부. 사부 : 형제의 아내끼리 서로 부를 때, 맏며느리가 다음 며느리를 부를 때 제부, 그리고 제부가 맏며느리를 부를 때 사부라 합니다.

시마에는 석 달(三月)이다.
그 정복은 종증조부, 증조모, 증조의 형제와 자매, 그리고 형제의 증손과 증조부, 증조모를 위해서 입습니다. 종형제의 자매, 외손 내외 종형제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복으로는 남편 형제의 증손과 남편의 손자와 남편 종형제의 아들에게도 역시 같습니다. 서모. 유모. 사위. 장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 죽은 것(상)을 위해 입는 복(服)은 차례로 한 등씩 내려갑니다.
보통 8세에서 11세 사이에 죽은 경우는 하상(下상"일찍죽을 상"), 12세에서 15세 사이에 죽은 경우는 중상(中상), 16세에서 19세 에 죽은 경우는 장상(長상)이라 합니다.

8세가 못되면 복이 없는 상이니 그저 곡만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아이로 죽은 것이 기년(朞年) 복에 親이면 열흘에 사흘씩 곡을 하고, 시마에 親이면 사흘로 제한합니다.

낳은 지 석 달 미만은 고도 하지 않습니다.
단 약혼했거나 결혼했으면 상(상:일찍죽을 상)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라는 것은 사람의 정으로 인연한 것이라 곡육의 정이라는 것은 어른이나 어린이나 다를 것이 없으니 아이들이 죽은 복이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모든 남자가 남의 후계자가 된 사람과 여자가 남에게 간 사람이 자기의 친당(親黨)을 위하는 데는 모두 한등씩 내려갑니다.
딸이 남에게 간 사람은 복이 내려갑니다. 그리고 제상(除喪)이 되기 전에 쫓겨났으면 그 위 본복을 입습니다. 이미 제상했으면 복을 다시 입지 않습니다. 부인이 남편의 당(黨)을 입을 때에 상사를 당하여서 쫓겨났으면 그 복을 벗습니다. 첩이 자기 친당을 위해 입는 복은 일반 사람과 같이 합니다.

마음으로 슬퍼하기를 3년을 합니다.(心喪三年)
심상이란 몸에 베옷을 입지 않고 마음으로 슬퍼한다는 뜻으로 원칙적으로는 스승에게 해당되는데, 마음으로 3년을 채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년을 입되 3년을 펴는(伸)것은 아버지가 계시는데 어머니를 위하는 것,적모,계모도 같습니다.

또는 쫓겨나간 어머니, 시집간 어머니, 부모가 계신데 양부모, 적손이 할아버지가 계신데 할머니(증 고조가 계신데 증 고조모도 같습니다.) 그리고 본 생부모, 며느리가 시아버지가 계신데 시어머니를 위함과 첩의 아들의 처가 남편의 적모, 남편의 승중도 그의 부모를 위하는 것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서자로서 아버지의 뒤가 된 자는 어머니를 위하는 것은 시마에 3년을 펴는 것이며, 출모와 가모를 위하는 것은 비록 복은 없으나 3년을 펴는 것입니다.

조복(弔服)에 삼(麻)을 더합니다.
복이 없는 부인이나 일가 고모, 맏누이 혹은 누이동생으로 시집을 간 사람 또는 친구들이나 선비,종들이 위하는 것이다. 그러나 삼 한가닥으로 태두리를 하여 머리에 쓴다는 것이 어려워서 그저 흰띠로 석달이면 정을 편다고 합니다.

성복한 날 주인 형제들이 처음으로 죽을 먹습니다.
아들들은 죽을 먹습니다. 처나 첩 또는 기녀이나 아홉달 복을 입는 사람들은 거친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며,맛있는 나물이나 과일은 먹지 않습니다. 다섯달 복이나 섯달 복을 입는 사람들도 술을 마시고 고기는 먹되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이때부터 연고가 없으면 밖에 나가지 않고 만일 부득이한 일로 출입을 하게 되면 순박한 말에 베안장을 하거나 흰 가마에 베 주렴한 것을 탑니다.
문상(聞喪)
객지에 나가 있다가 부모의 상(喪)을 듣고 돌아오는 것을 일컫습니다.
부음(訃音)을 듣는 즉시 곡을 하며 부고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 절을 하고 흰 옷으로 갈아 입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상복으로 다시 갈아 입고 시신 앞에 나아가 슬피 곡을 합니다.

심상(心喪) - 실제로 상복은 입지 않은 채 마음으로 3년 동안 슬퍼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는 스승을 위하여 행하는 것이나 아버지가 계실 때 어머니를 위해서나 또는 적모(嫡母)나 계모, 재가한 어머니를 위해서도 이와 같이 합니다.

조상(弔喪) - 조상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하여 찾아가 인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통식 상례의 경우 조상은 원래 성복(成服) 후에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복 전에는 가까운 일가 친척이나 친한 친구가 가서 상주에게만 인사하고 영구(靈柩)에는 절을 하지 않습니다.

성복 후라도 망인(亡人)과 생시에 안면이 없었거나 여자인 경우 빈소에는 절하지 않고 상주에게만 인사합니다. 조객은 먼저 호상에게 성명을 말하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상주는 일어나서 '애고 애고…'하고 곡을 한다.
호상이 조객을 안내하여 영좌 앞으로가면 조객은 '허희 허희… '(보통은 '어이 어이…')하고 슬피 곡을 한 뒤 두 번 절을 합니다. 향을 피우고 무릎을 꿇고 앉는다. 집사가 무릎을 꿇고 잔을 조객에게 주고 술을 따릅니다.
조객이 이것을 다시 집사에게 주어 영좌 앞에 놓게 하고 일어서면,호상이 상주의 곡을 그치게 합니다. 축관이 서쪽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제문(祭文)을 읽고 조객이 가져온 부의(賻儀)의 명세를 바치고 나면 조객과 상주가 모두 슬피 곡을 합니다.

고인에 대한 인사가 끝나면 조객은 상주와 맞절을 한 다음 무릎을 꿇고, "상사(喪事)를 당하시어 얼마나 망극하십니까" 또는 "상사 말씀, 무슨 말씀으로 여쭈오리까" 또는 "병환이 침중하시더니, 상사를 당하시어 얼마나 망극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합니다. 상주는 머리를 숙여 슬픈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대답을 대신하기도 하고, "망극하옵니다""원로에 수고하시니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부의(賻儀) - 상가에 부의를 보낼 때는 백지에 단자(單子)를 써서 봉투에 넣어 보냅니다.
단자를 쓰지않을 때는 봉투에 물목(物目)을 기록합니다. 부의는 돈이나 상가에서 필요한 물건으로 합니다.
치장
옛날에는 석 달만에 장사를 지냈는데,이에 앞서 장사를 지낼 만한 땅을 고릅니다. 묘자리를 정하면 이어 장사 지낼 날짜를 잡습니다. 날짜가 정해지면 영역에 산역을 시작하고 토 신에게 사토제를 지냅니다.

천광(穿壙) : 사토제가 끝나면 드디어 땅을 파기 시작하여 광중(壙中)을만듭니다.
광중을 팔 때는 금정기(金井機)를 땅 위에 놓고 역사(役事)를 시작합니다. 금정기는 나무 막대기 네 개를 가지고 정(井)자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데, 관의 크기
를 짐작하여 반듯하게 놓고서 네 모퉁이에 말뚝을 박아 표시한 뒤 그 모양대로 파 들어갑니다. 구덩이를 다 파고 나면 석회에 모래를 섞어 발라서 관이 들어갈 정도 크기의 곽(槨)을 만듭니다.
발인(發靷)
관을 방에서 들고나와 상여로 옮기는 것을 천구(遷柩)라 합니다. 상여가 상가를 떠나 장지로 출발하는 것을 발인 또는 출상(出喪)이라 합니다. 발인시에는 반드시 발인제를 지냅니다. 발인제 때 관의 위치는 천구하여 관을 상여 앞에 두고 발인제를 지내는 경우 영구(靈柩, 관)을 상여 위에 올려 모셔 놓은 다음 발인제를 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발인제는 간단하게 제물을 차리고 발인축을 읽고, 맏 상주는 두 번 큰 절(단작이배;單酌二拜)을 합니다. 발인제를 지내고 상여꾼들이 상여를 처음 들어올렸을 때 망자의 집 쪽으로 향하여 세 차례 상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데, 망자가 집을 보고 마지막 하직 인사라 합니다. 상두꾼은 보통 남자들이지만 상여가 나갈 때 상여의 뒤쪽에 광목을 길게 늘어뜨려 부인들이 이것을 잡고 따라 가기도 하는데,이를 '설매' 또는 '배줄'이라 하고 혼이 저승갈 때 타고 가라는 뜻입니다.
운구(運柩)와 노제(路祭)
발인 후 상여를 장지로 운반 이동하는 것을 '운구' 또는 '운상(運喪)'이라 하거나 '행상 나간다'고 합니다. 운구를 담당하는 일꾼은 '상두꾼'이라 하며,상여노래의 앞소리를 하는 사람을 '선소리꾼'이라 합니다.

운상 때는 맨앞에서부터 명정(銘旌)영여(靈與)만장(輓章)운아삽(雲亞삽)상여(喪輿) 상주, 백관, 조문객의 차례로 줄을 잇습니다. 노제(路祭)를 안 지낼 수도 있지만 운구 도중에 보통 한 차례를 지냅니다. 노제는 주로 망령(亡靈)의 친구들이 주제관이 되어 지내므로 원하는 우인(友人)들이 많은 경우는 두서너 차례 지내기도 합니다.

노제의 장소는 마을 어귀·골목 어귀·삼거리 등 망령과 추억이 깃든 장소를 지날 때 지내는데,친구들이 사자와의 마지막 하직인사로 지내는 것으로 사자와 이별을 섭섭하게 여겨 행하는 제사입니다.
하관(下棺)과 부수 제례(祭禮)
상여가 장지에 도착하기 전에 장지에서 일하는 일꾼을 '산역꾼'이라 합니다. 산역꾼과 지관은 장지 근처의 바위나 개울가에 가서 술,과일,어포를 차려 놓고 '오늘 이산에 손님이 들어오니 산신께서는 손님을 잘 보살펴 달라'고 빌면서 산신제(山神祭)를 지냅니다. 그리고 묘를 쓸 자리에 명태를 막대기나, 삽에 묶어 꽂아 세우고,그 주위에 술을 뿌리고는,개토제(開土祭)를 지냅니다. 묘자리를 조성하기 위해 구덩이를 팔 때는 묘터의 상·중·하에 술을 붓고,술을 부은 자리에 괭이로 각기 흙을 파기 시작합니다. 이 광중을 파는 것을 '청광 낸다' 또는 '굿 낸다'고 합니다. 하관은 천광이 끝나면 지관이 잡아준 하관 시간에 맞추어 상제들이 상에서 관을 운반하여 와서 베끈을 잡고 천천히 하관을 합니다. 하관을 할 때 상주는 곡을 하지 않습니다.
하관은 시신의 머리는 북쪽으로 발은 남쪽으로 향하게 하여 하관을 합니다. 하관 때 시신을 관에서 끄집어내어 다시 묻는 '동천개'는 쓰지 않고 관채로 묻는데, 이때 지관이 하관을 보면 해롭다고 정해주는 나이의 사람이 하관을 보게 되면 중상을 당한다 하여 하관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발인날이 말날(午日)인 경우 쥐띠인 사람과 죽은이와 상극의 띠를 가진 이가 하관을 보면 죽은 사람이나 산사람 모두에게 해롭다고 하여 보지 않습니다. 상주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관이 끝나면 지관은 관을 바로 잡고 평평한지 여부를 살펴 이상이 없으면 흙덮기에 들어가는데 '복토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봉분이 완전히 성분되었을 때 주과포를 차려 평토제(平土祭)를 지냅니다.

평토제를 지내고 나면,집사가 영좌(靈座 : 혼령을 안치하는 장소)를 철거하고 상주는 영여에 혼백을 모시고 왔던 길로 되돌아 집으로 오거나,상여가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되돌아온다.(다른 길로 와야 귀신이 못 따라 온다고 합니다) 되돌아올 때 상주들은 영여를 뒤따르는데 이를 반혼이라 합니다.

집에 돌아오면 안상주들이 곡을 하면서 혼백을 맞이합니다. 혼백은 빈소에 모십니다. 그러면 망자에게 반혼을 고하는 제를 지내는데 이를 반혼제(返魂祭)라 합니다. 앞에 주과포혜를 진실하고(차려놓고) 술을 치고 축을 읽고 상주들이 두 번 절합니다.
기제사(忌祭祀) 전의 각종의례

영좌를 장지에서 반혼하여 와서 혼백을 다시 모시고 난 후부터 담제(嬉祭)를 지내기 전까지 지내는 각종 제사를 묶어 흉제(凶祭)라 합니다. 기제사 지내기 전의 각종 제사는 담제를 지내므로써 보통 끝이 납니다.

우제(虞祭)
갓 돌아가신 영혼을 위로하는 뜻으로 지내는 제로 일종의 위령제입니다. 우제는 세 번 지내는데, 세 차례 모두 다 그 집안의 기제사 방식(가문에 따라 다름)과 동일하게 지내고 곡을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초우제(初虞祭)
반혼한 혼백을 빈소에 모시며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초우제라 합니다. 초우제와 반혼제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우제는 장사 당일에 지내야 합니다. 초우제를 지내고 나면 상주 이하 상제들은 비로소 목욕을 할 수 있지만 빗질은 하지 못합니다.

재우제(再虞祭)
원래는 초우제를 지내고 난 다음날 또는 그 하루 거른 다음날 아침에 지냅니다. 보통은 초우제 지낸 다음날 아침에 지냅니다.

삼우제(三虞祭)
재우제 바로 다음날 아침에 지냅니다. 삼우제를 지내고 나서 상주는 비로서 묘역에 갈 수 있습니다. 상주는 간단한 묘제(墓祭)를 올리고 성분이 잘 되었는지 묘역이 잘 조성되어 있는지를 직접 살피고 잔손질을 합니다. 최근에 와서는 상기(喪期)를 단축할 경우 삼오날(삼우제날) 가서 봉분 옆에 흙을 파고 혼백을 묻습니다. 이를 매혼(埋魂)이라 합니다.

졸곡제(卒哭祭)
삼우제를 지내고 3개월 이후 날을 잡아 졸곡제를 지냅니다.
최근에는 상기가 짧을 경우 삼우제가 끝난 뒤 첫 강일에 지내기도 합니다. 졸곡제를 지내고 나서 상주는 아침 저녁으로 조석을 올릴 때만 곡을 하고, 평시에는 빈소에서 곡을 하지 않습니다. 졸곡제 전에는 축문에 상주를 "疏子○○"라 쓰지만 졸곡 후에는 "孝子○○"라고 씁니다.

부제
졸곡제 다음에 지내는 제사로 신주를 조상 신주 곁에 붙여 모시는 제사입니다. 사당이 있는 경우 망위(亡位)의 신주를 모셔가서 이미 봉안되어 있는 선망신위(先亡神位)들과 존비·위차에 맞게 자리매김하여 제사를 모십니다. 철상 후 빈소로 신주를 다시 모셔옵니다.

 

 

소상(小祥)
사망 후 1년만에 지내는 제사로 제사 방식은 우제와 비슷합니다. 먼 친척도 오고 문상객(주로 초상 때 조문오지 못한 사람)도 많이 오므로 음식을 많이 장만해 대접합니다. 소상을 치르고 나면 일반적으로 바깥상주와 안상주는 요질과 수질을 착용하지 않습니다.

대상(大祥)
사망 후 2년만에 지내는 제로 소상과 같은 방식으로 지냅니다. 소상 때 보다 많이 오는 큰 행사입니다. 보통 대상이 끝나면 사당이 있는 경우 신주는 사당에 안치하고 영좌는 철거합니다. 담제를 따로 지내지 않는 경우는 이날 바로 탈상하고 상기(喪期)를 끝내기도 합니다.

담제
대상 후 두달째 되는 날을 잡아 제사를 지내고 이날 탈상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지금은 지내지 않고 있습니다. 담제 때 탈상하고는 사당 고사를 한번 더 지내는데 이를 길제(吉祭)라합니다. 지금은 이 길제도 사라졌습니다. 이후의 제사는 기제사로서 이는 제례(祭禮)에 포함시키고 상례에는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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