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원주민과의갈등...
"굴러온 돌이 감히…" vs "텃세 너무하네"
집 건축·마을시설 이용 등 놓고 기존 주민들과 마찰 빚는 경우 많아
문화적 차이 좁히지 못해…심한 경우엔 폭력사태까지
#1. 귀촌을 꿈꾸던 A씨(37)는 경기 남양주시의 한 계곡 주변에 전원주택을 짓기로 하고 2년 전 토지를 매입했다.
전원주택 대지 기반공사를 마쳤을 때 마을 주민들이 찾아왔다.
주민들은 “기반공사 중 발생한 폐기물을 불법적으로 묻는 것을 확인했다”며 “마을발전기금 7000만원을 내지 않으면 신고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후 주민들은 마을 행사 등이 있을 때마다 찬조금을 요구했고, A씨는 결국 귀촌을 포기하고 땅을 팔아버렸다.
#2. 2011년 강원 영월군 S면으로 귀촌해 하천부지에서 캠핑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씨. 여름 성수기만 되면 원주민들이 운영
하는 캠핑장의 ‘공공의 적’이 됐다.
원주민 캠핑장 대부분이 하천부지를 이용하고 있는데 유독 이씨의 캠핑장만 군청의 단속을 받았다.
최근 100만원이 넘는 과태료 고지서를 받은 이씨는 “캠핑장을 운영하는 지역 주민들이 신고한 것”이라며 “캠핑장을 지을 때는
하천의 돌 하나만 옮겨도 불법이라며 공사를 방해했다”고 말했다.
힐링과 제2의 인생을 겨냥한 귀농·귀촌이 붐을 이루고 있지만 정작 마을 공동체는 원주민과 귀농·귀촌인 간 반목으로 흔들리고 있다. 원주민들은 조용했던 마을에 어느 날 불쑥 나타난 외지인이 제 잇속만 챙기며 동네 인심을 망친다고 배척하고, 귀농인들은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파하는’ 식의 원주민 텃세를 견디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이 과정에서 꿈을 접는 악순환 사례가 늘고 있다.
◆‘마을 텃세’에 무너지는 귀농의 꿈
강원 홍천군 H면에서 캠핑장을 운영 중인 백모씨(30)는 지난 20일 기자에게 원주민 텃세에 쫓겨나듯 첫 귀촌지를 떠난 사연을 들려줬다. 그가 귀촌을 결정한 것은 2009년. 미국 유학 중이던 백씨는 갑작스럽게 나빠진 간을 치료하려고 일시 귀국했다.
평소 귀촌을 꿈꿨던 백씨의 부모님은 그에게 함께 시골로 내려갈 것을 권유했고, 그 역시 흔쾌히 수락했다.
백씨의 가족은 24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강원 원주시 S면의 한 작은 마을을 정착지로 결정했다. 가족이 다니던 교회에서 이 지역 폐교를 교육청으로부터 임대해 관리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백씨 가족은 1억원을 투자해 폐교를 수련·캠핑시설로 리모델링하고 근처에 귀촌 생활을 할 집도 지었다. 시골 분교에서의 색다른 체험을 즐기려는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캠핑장은 인기를 모았다. 여름 성수기에는 월 4000만원의 매출도 올렸다.
문제는 폐교 임대 기간이 끝나면서 불거졌다. 지역 주민들이 “폐교를 직접 운영할 테니 나가라”고 요구해서다. 마을개발위원회는 교육청에 진정서를 냈고, 교육청은 문제 확산을 막으려고 폐교를 원주시청에 팔았다. 백씨 가족은 지난해 12월 마을을 떠났다. 마을의 한 주민은 “주변에서 오토캠핑장을 운영하던 지역 주민들에게 백씨의 캠핑장은 강력한 경쟁상대였다”며 “흉물처럼 방치된 폐교를 고쳐 마을 경제를 살리고 이웃과 어울리려고 무던히 애썼는데 텃세에 쫓겨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마을에는 백씨 외에도 2000년 이후 10여가구 정도가 이사왔지만 현재 한 가구만 살고 있다. 16년 전 서울에서 이사와 터를 잡고 살다 떠난 K씨는 “유독 텃세가 심해 대부분 귀농민들이 못 버티고 도시로 돌아갔다”며 “마을에 발전기금을 내고, 때 되면 인사치레로 음식을 돌리면서 정착하려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마을 사람들의 굳은 표정이었다”고 토로했다.
◆“관습 따르라” vs “법과 원칙이 중요”
귀농 인구가 늘면서 원주민들과의 크고작은 다툼은 마을에 있는 시설물 사용에서 시작된다.
시골마을은 도시와 달리 물탱크에 물을 저장해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탱크 시설 등을 건설하는 데 마을 주민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냈지만, 외지인들은 뒤늦게 들어와 무료로 이용하면서 갈등이 생기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토지 소유에 대한 기준도 원주민과 외지인의 골을 깊게 만드는 원인이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외지인들은 농촌에 이주해 집을 지을 때 “내 소유의 땅”이라며 마을 주민들이 다니던 길에 울타리를 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도시에서는 땅 3.3㎡(약 1평)가 큰 재산이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이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만 ‘공동 소유’ 개념이 강한 마을 주민들은 울타리가 생겨 평소 사용하던 길을 둘러가게 되면서 불만이 쌓인다.
귀농 블로그를 운영하는 한 귀농컨설턴트는 “오랜 기간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주민들은 합의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지키는 예의와 관습이 있다”며 “외지인이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법과 원칙을 내세우면 원주민과 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씨가 떠난 S면 일대에서 6개리의 마을개발을 관리하는 심모씨(60)는 “백씨의 주장과 달리 수련장 때문에 주변에서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주민들도 있었고, 임대 문제는 기간 종료 후 법적 절차를 밟아 이뤄진 일”이라며 “원주민은 자격지심을 버리고, 외지인은 마을 문화에 순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골과 도시문화 격차 해소
전문가들은 시골과 도시의 생활 방식이 다른 탓에 원주민과 외지인 간 충돌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정된 자원을 바탕으로 사는 시골에 외지인이 들어올 경우 밥그릇이 줄어든다는 경계심을 갖기 쉽다는 설명이다. 박창식 농협대 교수는 “농경문화 특성상 동네 주민들이 재배하는 작물은 대부분 비슷하고 지역별로 봐도 비슷한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며 “시골 인심이 아무리 좋아도 주민들 입장에서 귀농민이 들어오면 경쟁자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민감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주민에게 외지인이 경쟁 상대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예컨대 캠핑장의 경우 초기에는 경쟁자일 수 있지만 마을 전체로 보면 더 많은 이용객을 불러들여 공존할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런 원주민의 인식 변화를 위해 최근 문화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농식품부는 지역민들에게 “귀농·귀촌민이 마을에 들어올 경우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고 지역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
담긴 교육 자료와 동영상을 준비하고 있다.
귀농·귀촌 뭐가 다르지?
◆귀농=농사를 짓기 위해 농촌으로 이사하는 것.
◆귀촌=전원생활 등을 위해 농촌으로 이사했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 농사 외의 다른 일을 하는 것은 귀촌에 포함.
텃세 극복 최선의 방법은 적극적 마을 활동 참여
평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꿈꿔왔던 문모씨(42). 네 명의 자녀를 둔 그는 2009년 전남 해남군의 한 작은 마을로 귀농을
결정했다. 이 마을에 대안학교와 비슷하게 운영되는 분교가 있어 다른 지역보다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시골 생활이 처음이지만 문씨의 가족은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문씨는 귀농 직전 성공한 10년차 귀농인으로부터 배우는 농업 인턴 제도를 이수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마을 주민과 어울리는 방안들을 고민했다.
그는 분교의 방과후 활동교사를 자처했다.
여름에는 아내와 함께 여름학교 교사를 맡았다.
마을잔치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마을 어른들을 위한 영화 상영회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행했다.
그렇게 하기를 1년여. 문씨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고 지금은 마을개발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마을 주민 텃세로 어려움을 겪는 귀농·귀촌인이 많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텃세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적극적인 마을 활동 참여를 권유했다.
지난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촌지역 활성화를 위한 귀농·귀촌 추진 방안에 따르면 지역 활동 참여율이 낮은 지역의
귀농·귀촌인 63.5%는 ‘이주 이후 긍정적 변화가 없다’고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문호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귀농·귀촌인 스스로가 마을에 융화하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 좋다”며 “이주 전에는 마을 이장처럼 오피니언 리더들과 친해지고 이주 이후에는 마을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석, 봉사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자료/한국경제신문: 김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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