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신용등급과 평가
'신용등급 장사'가 부른 시장 왜곡(상)
국내 신평사, 기업 10곳중 9곳에 '투자적격'
'엄격한 무디스'…2곳중 1곳에만 부여
기관투자가 "신평사 등급은 참고용일 뿐"
“자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신용평가회사들이 매긴 신용등급보다 형편없는 재무 상태를 갖고 있는 기업이 많습니다.
신용평가사 등급만 믿고는 제대로 된 채권 매매를 할 수가 없어요.”(A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국내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장사’로 정상적인 채권 투자가 어려울 정도로 시장 왜곡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신용평가사들이 일감 수주를 위해 높은 등급을 남발, ‘등급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나이스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신용평가사가 매긴 신용등급 중 A등급 이상의 비중은 77.4%로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22.9%)보다 3.37배나 높다.

○“A등급 절반이 채권 발행 못해”
국내 3대 신용평가사가 기업에 부여한 투자적격등급(BBB등급 이상) 비중은 90.2%다.
기업 10곳 중 9곳은 투자할 만하다는 일종의 ‘품질보증서’를 써준 것이다.
반면 한국신용평가의 대주주인 무디스가 투자적격등급을 준 비중은 51.6%에 불과하다.
국내 신용평가사와 달리 기업 두 곳 중 한 곳은 투자 위험이 극히 큰 ‘정크본드(투기등급)’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는 국내 신용평가사가 제시하는 신용등급이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연기금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AA등급 이상의 우량 채권에만 투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투자적격등급에 들어가는 BBB등급은 물론 A등급도 상당수 거품이 끼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대형 증권사 회사채 발행 담당 임원은 “건설·해운 등 실적이 악화한 회사나 재무 상태가 상대적으로 안 좋은 대기업
계열사들이 회사채 발행이 안 되는데도 A등급에 속해 있다”며 “전체 A등급 112곳 중 절반가량이 이에 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그러지는 채권시장
강성부 신한금융투자 채권분석팀장은 “등급 정의상 ‘안전하다’는 의미를 가진 A등급마저 시장에서 소화가 안 되는 것은
그만큼 투자자들의 불신이 크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기관투자가들은 소위 ‘내부 등급’을 만들어 쓰고 있다.
한 대형 생명보험사 운용 담당 임원은 “법에 의해 부여되는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은 시장에선 단순 참고용으로 전락한
지 오래”라고 전했다.
신용평가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신용평가사 실장은 “A등급 이상 우량 등급의 비중이 높아진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투자심리 악화로 BBB등급 이하 기업들이 채권 발행을 하지 못하면서 평가 자체를 받지 않은 데 따른 것”이라며 “등급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신용 불량’의 신용평가사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이런 불신은 카드 사태 등으로 촉발된 금융시장 불안이 끝난 2004년부터 10년 가까이 누적돼 온
현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2003년 20.3%였던 A등급 비중은 2004년 27.2%로 뛴 뒤 2010년 30.0%로 높아졌다.
한 전직 신용평가사 연구원은 “2000년대 후반에 한 신용평가사가 특정 기업의 등급을 올리면 다른 신용평가사들은 고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해당 기업은 물론 유사 기업들의 등급도 경쟁적으로 올린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장은 “신용평가사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업황과 수익성이 추락한 기업들의 등급 하향을 제때 하지 못해 등급 고평가 상태가 상당기간 지속된 경우도 많다”고 했다. 2011년 이후 LIG건설 웅진그룹 STX그룹 등 A등급 기업들이 잇따라 좌초하자 ‘A등급 외면 현상’이 고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투자협회 설문
국내 채권 전문가들은 신용등급에 ‘거품’이 많은 업종으로 건설사를 꼽았다.

금융투자협회가 ‘신용평가기관 평가’를 위해 지난달 증권사 크레디트 애널리스트(신용분석가), 채권 펀드매니저 등 1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신용등급이 적정 등급보다 고평가된 업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많은 51.9%(53명·복수 응답 기준)는 건설업을 꼽았다.
주택 경기가 활황을 보인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 건설사들의 신용등급은 전반적으로 빠르게 상승했다.
응답자들은 건설업종에 이어 조선(32.3%), 해운·항공을 포함한 운송업종(31.3%)의 등급이 과도하게 높은상태라고 답했다. 조선과 운송업종은 건설과 함께 업황이 매우 악화돼 있는 이른바 ‘3대 취약 업종’으로 꼽혀왔다.
또 응답자의 30.3%(31명)와 29.4%(30명)는 카드·캐피털과 증권업종이 적정 수준보다 높은 등급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카드·캐피털 업체에 대해 작년 3월 할부취급수수료 폐지, 같은 해 11월 대출금리 모범규준 시행, 올해 리스 약관 개선 작업 등 당국의 규제가 강해지면서 이들 업종의 장기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증권사들은 거래대금 급감, 수수료율 하락, 자산운용 수익 감소 등 구조적 불황에 빠진 상황이다.
한 증권사 크레디트 애널리스트는 “카드·캐피털이나 증권업종은 시장의 등급 고평가 우려는 크지만 실제 등급 강등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금융업종의 등급이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따로 가는' 국내외 등급
"글로벌 흐름 무시…국내 등급 신뢰 훼손"
GS칼텍스는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로부터 ‘Baa3’와 ‘BBB-’를 받고 있다.
아직은 ‘투자적격등급’이지만 한 등급만 떨어지면 ‘투기등급’이 된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가 매긴 등급은 모조리 AA+다.
최상위인 AAA보다 한 단계 낮은 것으로 글로벌 등급보다 8단계 높다.
이경록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한국 정부에 대한 국내(AAA)와 글로벌(AA-~A+) 등급 차가 3~4단계인 것을 감안할 때
국내 기업들에 대한 국내 신용평가사의 과대 평가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신용등급보다 지나치게 높게 형성돼 있는 국내 신용등급을 놓고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기업 실적과 신용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글로벌 등급보다 상대적으로 고평가됐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신용평가사들은 “평가 대상과 잣대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글로벌 신용평가사와 단순 비교한뒤 국내 등급
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변한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국가와 기업을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한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도 신용평가사에 따라 AA-~A+를 받고 있다.
반면 국내 신용평가사는 한국 정부의 부도 가능성을 0로 간주, AAA에 고정한 뒤 기업 신용을 매긴다.
출발점 자체부터 몇 단계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글로벌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한국 회사채는 대부분 투기등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한계를 감안해도 한국 기업에 대한 국내외 등급 괴리는 지나치게 크다는 평가가 많다.
기업경영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국내와 해외 등급을 모두 보유한 33개 기업 등급을 조사한 결과 민간 대기업은 지난달 국내에서 평균 AA+를 받았지만 해외에서는 6단계 아래인 ‘BBB+’를 받았다. GS칼텍스는 8단계, 포스코 현대자동차 KT 롯데쇼핑 현대제철 등은 7단계 차이가 났다. 한국 정부에 대한 국내외 등급차가 3~4단계인 것을 감안할 때 큰 괴리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흐름’을 무시하는 국내 신용평가사의 등급 조정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무디스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2010년 8월부터 포스코 등급을 떨어뜨려 왔지만, 국내에선 3년10개월이 흐른 지난 11일에서야 한국기업평가가 AAA에서 AA+로 등급을 내렸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작년부터 국내 화학·정유 기업들의 등급과 전망을 낮추고 있지만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아직 아무 조치가 없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의 특별검사로 국내 신용평가회사와 기업 간 부적절한 유착관계가 드러나면서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기업과 신평사 사이에 형성된 ‘갑(甲)과 을(乙)’의 관계를 깨뜨리는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가장 먼저 손봐야 할 것으로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할 때마다 자체적으로 두 개 신평사를 선택해 등급을 받은 뒤 수수료를
지급하는 시스템이 꼽힌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기업들은 ‘등급 쇼핑’(경쟁을 부추겨 등급을 잘 주는 신평사로부터 평가를 받는 행위)을 하고,
신평사는 여기에 굴복해 부풀려진 등급을 주는 관행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제3의 독립기관 등이 회사채가 발행될 때마다 신평사를 강제 배정하는 ‘의무지정제’ 같은 초강경 조치를 도입,
등급 쇼핑을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시장 원리를 지나치게 무시하는 제도라는 반론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기업이 일정 기간 한 신평사로부터 등급을 받은 뒤 의무적으로 다른 신평사로 바꾸도록 하는 ‘순환평가제’를 대안으로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강성부 신한금융투자 채권팀장은 “기업들이 현행처럼 복수 평가를 받되 한 개 신평사는 순환평가제 적용을 받고 나머지 한 개는 자율적으로 선정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신평사들의 정보 공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신평사들은 부도율 산정 기준도 제각각이라 외부인들이 통일된 잣대로 업무 실적을 평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대학 교수는 “통일된 기준에 근거한 부도율, 특정기업(그룹)에 대한 수수료 의존도 등 평가 관련 주요 정보를 공시토록 하고 독립된 외부 기관들이 신평사를 평가하고 이를 공개하는 것을 활성화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신평사 간 우열이 가려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에 도입 예정인 독자신용등급제를 조기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독자신용등급은 그룹이나 계열사의 지원 여부를 빼고 해당 기업의 재무상태만 따져 신용등급을 부여하고 이를 공개하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신평사 관계자는 “독자신용등급이 도입돼 등급 결정 과정이 좀 더 구체적으로 외부에 공개될 경우 기업들이 신용도보다 높은 등급을 신평사에 요구할 여지가 줄어든다”고 했다.
자료:한국경제신문:이상열.윤아영 기자
'생활법률과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회사채신용등급과 평가3 (0) | 2014.06.25 |
|---|---|
| 회사채신용등급과 평가2 (0) | 2014.06.24 |
| 주택연금 (0) | 2014.06.21 |
| 대법원 2014.4.10. 선고 2012다29557 판결[보관금반환]채권양도통지.이행지체 (0) | 2014.06.19 |
| 대법원 2014.4.10. 선고 2013다76192 판결[보관금] 질권해지신청후 해지않된질권청구.. (0) | 2014.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