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19다277157 판결
[지상권설정등기말소등기절차이행][공2022상,86]
【판시사항】
[1] 의료법인이 재산을 처분하려면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 의료법 제48조 제3항이 강행규정인지 여부(적극) 및 위 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를 한 사람이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판단하는 기준
[2] 갑 의료법인의 기본재산인 토지에 을 지방자치단체가 건물을 신축하였고 갑 법인은 을 지방자치단체에 지상권설정등기를 해 주었는데, 갑 법인이 을 지방자치단체와 위탁경영 계약을 체결한 다음 위 건물에서 약 35년간 계속하여 병원을 운영하다가, 위 지상권설정등기가 의료법 제48조 제3항에서 정한 시·도지사의 허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무효라고 주장하며 그 말소를 구한 사안에서, 위 지상권설정등기 말소청구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고 본 원심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민법 제2조 제1항은 신의성실의 원칙(이하 ‘신의칙’이라 한다)에 관하여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신의칙은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여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의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해서는 안 된다는 추상적 규범으로서 법질서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 원칙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의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권리의 행사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신뢰를 제공하였다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상대방이 신뢰를 하는 데 정당한 상태에 있어야 하고, 이러한 상대방의 신뢰에 반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강행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를 한 사람이 스스로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는 권리의 행사라는 이유로 이를 배척한다면 강행규정의 입법 취지를 몰각시키는 결과가 되므로 그러한 주장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음이 원칙이다. 다만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요건을 갖추고 강행규정성에도 불구하고 신의칙을 우선하여 적용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강행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될 수 있다.
의료법 제48조 제3항은 의료법인이 재산을 처분하려면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는 의료법인이 재산을 부당하게 감소시키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경영에 필요한 재산을 항상 갖추고 있도록 하여 의료법인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하여 의료의 적정을 기하고 국민건강을 보호증진하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조항으로서 강행규정에 해당한다. 이 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를 한 사람이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는지는 위 법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2] 갑 의료법인의 기본재산인 토지에 을 지방자치단체가 건물을 신축하였고 갑 법인은 을 지방자치단체에 지상권설정등기를 해 주었는데, 갑 법인이 을 지방자치단체와 위탁경영 계약을 체결한 다음 위 건물에서 약 35년간 계속하여 병원을 운영하다가, 위 지상권설정등기가 의료법 제48조 제3항에서 정한 시·도지사의 허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무효라고 주장하며 그 말소를 구한 사안에서, 위 지상권설정등기 말소청구는 자신의 의무이행을 통해 지상권설정등기에 따른 부담을 용인해야 하는 지위에 있는 갑 법인이 오히려 의무이행을 하지 않은 것을 기화로 권리자가 될 을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그 말소를 청구하는 것인 점, 갑 법인이 위탁경영 계약을 통해 위 건물에서 병원을 계속해서 운영하기 위해서는 지상권설정등기가 필요하므로 위 지상권설정등기는 갑 법인의 설립 목적에 부합하고, 갑 법인의 재산을 부당하게 감소시키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료법 규정의 취지와 입법 목적에도 어긋나지 않는 점, 갑 법인은 지상권설정등기를 한 후 위탁경영 계약에 따라 위 건물에서 병원을 운영하다가 존속기간이 만료될 무렵 스스로 존속기간을 변경하는 지상권변경의 부기등기를 하였고, 그 후에도 아무런 이의제기 없이 위탁경영 계약에 따라 병원을 계속해서 운영하였던 점에 비추어, 위 지상권설정등기 말소청구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고 본 원심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민법 제2조 제1항, 의료법 제48조 제3항 [2] 민법 제2조 제1항, 의료법 제48조 제3항
【참조판례】
[1] 대법원 2003. 4. 22. 선고 2003다2390, 2406 판결(공2003상, 1192)
대법원 2005. 9. 30. 선고 2003다63937 판결(공2005하, 1687)
대법원 2021. 6. 10. 선고 2017다52712 판결(공2021하, 1269)
【전 문】
【원고, 상고인】 의료법인 용인병원유지재단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광교 담당변호사 윤우진)
【피고, 피상고인】 경기도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아침 담당변호사 현진희)
【원심판결】 서울고법 2019. 9. 25. 선고 2019나2008809 판결
【주 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이 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다음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는 이를 보충하는 범위에서)를 판단한다.
1. 사안 개요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따르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원고는 의료기관 운영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의료법인으로서 용인시 (주소 생략) 대 2,399㎡(이하 ‘이 사건 토지’라 한다)의 소유자이고, 원고의 정관에서 위 토지를 원고의 기본재산으로 정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인 피고는 이 사건 토지에 이 사건 건물을 신축한 후 1981. 10. 13. 소유권보존등기를 하였다.
나. 원피고는 1981. 12. 9.경 이 사건 토지에 이 사건 건물의 소유를 목적으로 존속기간을 1981. 12. 9.부터 30년으로 정하여 지상권설정계약을 하였고, 원고는 위 계약에 따라 피고에게 지상권설정등기를 해 주었다.
다. 원피고는 2011. 12. 7. 위 지상권의 존속기간을 2011. 12. 9.부터 30년으로 변경하기로 하는 지상권변경계약(이하 ‘이 사건 지상권변경계약’이라 한다)을 하였고, 이에 따라 원고는 같은 날 피고에게 이 사건 토지에 이미 설정된 지상권의 존속기간을 2011. 12. 9.부터 30년으로 변경하는 지상권변경의 부기등기(이하 부기등기에 의하여 변경된 등기를 ‘이 사건 지상권설정등기’라 한다)를 하였다.
라. 원고는 1982. 11. 1.경 피고와 위탁경영 계약을 체결한 다음 이 사건 건물에서 약 35년간 계속하여 ○○○○○○병원을 운영하다가, 2018. 1. 18. 이 사건 지상권설정등기는 의료법 제48조 제3항에서 정하는 시·도지사의 허가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적법한 원인을 갖추지 못한 무효의 등기라는 이유 등으로 그 말소를 청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2. 이 사건 지상권설정등기 말소청구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는지
가. 민법 제2조 제1항은 신의성실의 원칙(이하 ‘신의칙’이라 한다)에 관하여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신의칙은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여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의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해서는 안 된다는 추상적 규범으로서 법질서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 원칙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의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권리의 행사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신뢰를 제공하였다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상대방이 신뢰를 하는 데 정당한 상태에 있어야 하고, 이러한 상대방의 신뢰에 반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대법원 2003. 4. 22. 선고 2003다2390, 2406 판결, 대법원 2021. 6. 10. 선고 2017다52712 판결 참조).
강행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를 한 사람이 스스로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는 권리의 행사라는 이유로 이를 배척한다면 강행규정의 입법 취지를 몰각시키는 결과가 되므로 그러한 주장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음이 원칙이다. 다만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요건을 갖추고 강행규정성에도 불구하고 신의칙을 우선하여 적용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강행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될 수 있다(대법원 2005. 9. 30. 선고 2003다63937 판결 참조).
의료법 제48조 제3항은 의료법인이 재산을 처분하려면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는 의료법인이 그 재산을 부당하게 감소시키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그 경영에 필요한 재산을 항상 갖추고 있도록 하여 의료법인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하여 의료의 적정을 기하고 국민건강을 보호증진하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조항으로서 강행규정에 해당한다. 이 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를 한 사람이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는지는 위 법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나. 원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사건 지상권설정등기 말소청구는 신의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1) 이 사건 지상권변경계약이 시·도지사의 허가 없이 체결되어 아직은 그 효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지상권변경계약에 기초한 지상권변경등기절차 이행청구권의 기초가 되는 법률관계는 이미 존재한다. 피고는 위 허가를 조건으로 이 사건 토지에 관한 지상권변경등기절차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고, 원고는 그 허가신청 절차를 이행할 의무를 부담한다. 의료법상 지상권변경계약의 허가권자는 피고의 대표자인 경기도지사 또는 그 위임을 받은 용인시장이고 달리 위 허가신청을 불허할 사유가 없다. 원고의 신청에 따라 허가가 이루어지면 소급적으로 이 사건 지상권변경계약은 유효하게 되고 피고에게 위 계약에 따른 청구권이 발생한다. 결국 이 사건 지상권설정등기 말소청구는 자신의 의무이행을 통해 이 사건 지상권설정등기에 따른 부담을 용인해야 하는 지위에 있는 원고가 오히려 그 의무이행을 하지 않은 것을 기화로 권리자가 될 피고를 상대로 그 말소를 청구하는 것이다.
(2) 의료법인인 원고가 위탁경영 계약을 통해 이 사건 건물에서 ○○○○○○병원을 계속해서 운영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 지상권변경계약과 지상권설정등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이 사건 지상권변경계약과 지상권설정등기는 원고의 설립 목적에 부합하고, 원고의 재산을 부당하게 감소시키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료법 규정의 취지와 입법 목적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3) 원고는 최초 지상권설정계약에 따라 등기를 한 후 위탁경영 계약에 따라 29년간 이 사건 건물에서 ○○○○○○병원을 운영하였고, 그 존속기간이 만료될 무렵 스스로 존속기간을 2011. 12. 9.부터 30년으로 변경하는 이 사건 지상권변경계약을 피고와 체결하였으며, 그에 따른 지상권변경의 부기등기까지 하였다. 원고는 그 후에도 6년 이상 아무런 이의제기 없이 위탁경영 계약에 따라 ○○○○○○병원을 계속해서 운영하였다.
(4)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이 사건 지상권설정등기가 강행규정인 의료법 제48조 제3항에서 정한 시·도지사의 허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무효라고 주장하며 그 말소를 구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
다. 원심판결 이유를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은 의료법 제48조 제3항의 강행규정성에도 불구하고 신의칙을 우선하여 적용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서 정당하다. 원심판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강행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의 효력과 신의칙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
3. 결론
원고의 상고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도록 하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노정희(재판장) 김재형(주심) 안철상 이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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