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산 강화도 혈구산
바다와 산과 억새가 헛헛한 마음 달래주네
더위가 갔다. 무시로 뿌려대던 여름의 긴 빗줄기도 끝났다. 이제 파삭파삭 풀잎 마르는 가을이 바로 옆에 다가왔다.
하늘 높아지며 그 넓어진 공간만큼 마음도 허전한 시기다.
그 헛헛한 가슴 한구석을 달래는 데 등산이 특효약이다.
산정(山頂)에 올라 땅 위의 가을이 익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강화군 강화읍 남서쪽에 뾰족하게 솟아오른 강화도 혈구산(穴口山·466m)은 두드러지게 높지도 크게 유명하지도 않다. 하지만 특유의 시원스러운 전망과 쉽게 갈 수 있는 점 때문에 지역 주민들도 아껴두며 오르는 곳이다.
혈구산은 가을에 한층 돋보이는 곳이다.
정상부의 억새군락에서 바라보는 누런 들녘과 바다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 강화도 혈구산 정상에서 석모도가 내려다 보인다.
- 노랗게 물든 들녘이 푸른 바다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강화도를 찾는 등산객 대부분은 마니산(469.4m)이나 고려산(436.3m)으로 몰린다.
민족의 성산 마니산의 명성과 진달래로 유명한 고려산의 인기는 그만큼 강력하다.
하지만 혈구산 또한 충분히 명산의 대열에 오를 수 있는 저력을 갖춘 곳이다.
특히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의 탁월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산행은 고비고개에서 시작하는 것이 편하다.
강화읍과 외포리를 잇는 포장도로가 이곳을 지난다.
고려산과 혈구산의 중간쯤인 이 고갯마루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도로를 벗어나 숲을 뚫고 뻗은 오솔길로 들어섰다.
곧이어 길은 가파르게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정상으로 이어진 가장 짧은 길이라 경사도 그만큼 급했다.
고려산과 혈구산을 연결해 종주하는 이들이 힘겨워하는 구간이다.
한동안 낑낑거리며 비탈길을 오르니 갑자기 눈앞에 평지가 나타났다.
혈구산 능선상의 세 봉우리 중 첫째 산봉에 올라선 것이다.
이후 산길은 잠시 숨을 고르며 능선을 따른다.
그리고 둘째 봉우리 직전에 왼쪽 사면으로 돌아가는 지름길이 나 있다.
셋째 봉우리도 왼쪽으로 돌아갈 수 있다. 숲이 짙어 별다른 조망이 없으므로 지름길을 이용해 시간을 단축했다.
정상이 가까워질 즈음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비탈길을 따라 방향을 틀었다.
순식간에 고도가 높아지며 숲을 벗어났다.
근사한 노송(老松)이 가부좌를 틀고 앉은 바위 턱에서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발길을 재촉했다.
잠시 뒤 바위가 드러난 혈구산 정상이 얼굴을 드러냈다.
뾰족하게 도드라진 정상부는 특급 전망대였다.
시야를 가리는 나무가 전혀 없는 데다 덩치 큰 봉우리도 적당히 간격을 두고 섰다.
남쪽으로 진강산과 마니산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섰고, 동쪽에는 강화읍과 김포평야가 시원스럽다.
강화도 일대는 물론 북녘 땅과 덕적도까지 펼쳐지는 막힘없는 조망에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정상부에 드문드문 자라는 억새 군락도 멋진 풍광의 일부였다.
하얀 이삭을 드러낸 억새는 짙푸른 하늘과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바람이 불 때마다 혈구산 정상에 은빛파도가 쳤다.
억새만 떼어서 보면 이곳은 그다지 매력적인 장소가 아니다.
규모나 밀도가 억새 명산에 비해 형편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 바다와 산이 만들어 낸 가을 풍광과 함께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억새가 빛나는 혈구산의 가을은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였다.
◆산행가이드
혈구산을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는 고비고개(나래현)에서 출발해 정상으로 오르는 2.1㎞ 능선길로 경사가 급해 50분쯤 소요된다. 이 능선 위에 세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이를 우회하는 지름길이 동쪽 사면에 형성되어 있다.
능선길보다 사면을 지나는 지름길의 분위기가 오히려 낫다. 선택은 자유다.
혈구산 정상에서 산길은 다시 두 가닥으로 갈린다.
동쪽 능선은 찬우물약수 방향으로 내려가는 코스로, 능선에서 보는 전망이 뛰어나다.
정상에서 찬우물약수까지 약 4.6㎞ 거리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이 능선 중간쯤에 북쪽 황련사 방면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있다.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능선은 퇴모산(338.9m)을 경유해 외포리까지 연결된다.
혈구산에서 퇴모산까지 1.9㎞(40분) 구간은 조망이 별로 없는, 수풀이 우거진 길의 연속이다.
퇴모산에 올라야 남쪽으로 시야가 터지며 덕정산과 진강산이 보인다.
퇴모산에서 남쪽의 강화농협기술센터로 내려서거나, 계속해 능선을 타고 외포리까지(퇴모산에서 3.3㎞)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
체력이 좋은 산꾼들은 혈구산에서 북쪽의 고려산을 연결한 긴 종주 산행도 즐긴다.
적석사~낙조대(보타전)~낙조봉~고려산~고비고개~혈구산~퇴모산~외포리 코스는 6~7시간쯤 걸린다.
이 코스를 역으로 타면 낙조봉 혹은 낙조대(보타전)에서 일몰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코스는 능선의 굴곡이 심해 체력 소모가 많다.
◆여행수첩
서울지하철 신촌역 1번 출구 GS25 편의점 앞 정류장에서 강화로 운행하는 3000번 버스가 다닌다.
영등포에서 1번과 88번도 강화로 간다.
그 밖에 인천, 부평, 일산 등에서 강화를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
강화버스터미널(032-934-4363)에서 산행기점인 고비고개는 국화리경유 내가면으로운행하는36, 38번버스를 이용한다. 버스 시간을 맞추기 힘들 때는 택시를 이용한다. 강화택시 032-934-7898, 032-934-3737.
강화읍의 독일장여관(032-933-7267), 금호장여관(032-933-3311) 등 숙박업소가 많다.
혈구산 산행 기점인 고비고개 아래 국화리에 유엔준(032-933-3011), 가을국화(032-933-8150),
갑비고차(032-934-3614) 등 펜션이 밀집해 있다.
아침 일찍 강화에 도착했을 때는 강화군청 앞 신한은행 건너편 골목 신아리랑(032-933-2025)에서 식사가 가능하다.
맑은 갈비탕 국물에 우거지를 푸짐하게 넣은 해장국(6000원)을 내놓는다.
젓식사만 가볍게 하려면 강화읍 신문리에 있는 우리옥(032-932-2427)의 백반(5000원)도 무난하다.
10여 가지 반찬을 내놓는 소박한 밥상이다.
병어찌개나 불고기(1만원)를 추가하면 식탁이 푸짐해진다.
산행 뒤풀이로 외포리의 횟집이나 강화풍물시장 2층 식당가에서 밴댕이회무침과 함께 즐기는 인삼막걸리도 괜찮다.
강화도=김기환 월간 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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