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참 구수~하네"
보리밭 사잇길 아줌마 수다꽃…
제주올레 중년 여성 힐링투어 '온리유'
노래처럼 보리밭 사잇길을 걸었다.
구멍 숭숭 뚫린 까만 돌담으로 나지막하게 경계를 지은 사잇길, 금빛으로 물결치는 보리밭을 마주하니 걷는 이도 노래가 된다.
"제주는 보리가 유명해요."
올레지기의 설명대로 올레길을 따라 걷는 동안 곳곳에서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금빛 보리밭을 만났다.
한 발 한 발 걸어서 풍광의 일부가 되는 도보 여행의 붐을 일으킨 '제주올레'. 비영리 재단으로 시작한 제주올레가 설립 8년 만에
처음 기획한 여행 프로그램은 '4060' 중년 여성을 위한 힐링 투어다.
'온 세상의 이유는 나'에서 한 자씩을 따서 '온리유'라 이름한 프로그램. 40대 워킹맘에서 50대 도보여행가,
70대 제주 할머니까지 다양한 여성들이 모여 '걷기'와 '체험하기', 그리고 무엇보다 수다로 가득한 사흘 낮 이틀 밤을 함께했다.
안개와 구름이 성벽처럼 섬 전체를 둘러싼 첫날 무인 카페에서 출발한 올레길은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숲길과 새하얀 해안 절벽,
보리밭에 둘러싸인 그림 같은 마을을 지나 아담한 포구를 가로지르는 12코스다.
습기 가득 머금은 흙이 폭신한 카펫처럼 깔린 숲길은 살짝 땀이 날 정도의 적당한 경사로 산행에 서툰 여행자들을 맞았다.
"아이고, 제주 고사리가 최고인데…."
60대 주부와 검붉게 익은 오디를 처음 맛보는 도시 처녀가 어색함 없이 어울리는 비결은 역시나 수다의 힘.
갈매기가 발밑에서 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해안 절경이 우유처럼 짙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데도 '안개가 원래 피부 보습에
최고'라며 너스레를 떨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아줌마들만의 여유다.
제주 말로 '새가 나는 절벽의 바닷길'이라는 뜻을 지닌 '생이기정바당길'은 새똥으로 뒤덮인 새하얀 절벽과 사파이어처럼 파란 바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초록섬 차귀도의 풍경이 멋진 대조를 이루는 절경이자 12코스의 하이라이트다.
점심은 어촌 마을의 협동조합에서 운영하여 주민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어촌계식당에서 제주산 돼지고기와 고등어구이, 조물 조물
무친 해초와 나물로 차린 정식을, 저녁은 싱싱한 우럭조림으로 제주도의 속살을 맛봤다.
가끔은 가족을 위해 차려내야 하는 수고로운 한 끼가 아닌누군가가 나를 위해 차려주는 밥상이 그리운 아줌마들에게 선물과도 같은 식사다. 돔베고기라 불리는 삶은 돼지고기를 감칠맛 폭발하는 갈치젓에 찍어 먹으니 밥 한 공기도 순식간에 뚝딱이다.
해안 바위에서 거둬온 싱싱한 톳을 데쳐 새콤달콤하게 무쳐낸 톳 무침과 바다 내음 가득한 생미역 반찬도 순식간에 동난다.
다음날 아침 한 시간 동안 숲길을 걸어 도착한 낙천리 의자마을에서 본격적인 제주 체험이 시작됐다.
높이 10m에 달하는 거대한 의자 조형물이 입구를 장식한다.
낙천리 아홉굿마을의 의자공원은 마을 살리기 사업으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만든 1000여개의 의자가 독특한 쉼터이자 볼거리로
자리한다.
까마득한 학창 시절 미술 시간의 기억을 떠올리며 작업장에 둘러앉아 미니어처 의자를 만들어 보고, 제주산 메밀가루로 얇게 부쳐낸 전병에 역시나 맛있기로 소문난 제주 무로 만든 나물을 채워넣은 빙떡도 만들었다.
메밀향 그윽한 부꾸미에 살짝 삶아 참기름과 부추로 무친 무나물의 조합이 심심한 듯하면서도 손이 가는 별미다.
밤에는 여성학자 오한숙희가 함께하는 '힐링 수다' 한 판이 벌어졌다.
"여자들이 집을 한 번 나서려면 아흔아홉 겹 거미줄을 끊어내야 한다고 해요.
그만큼 가족과 주변을 돌보느라 한순간도 편히 쉬기 어려운 사람들이 중년의 여자들이잖아요.
올레를 걸으며 잠시라도 '돌보는 사람'의 의무에서 벗어나 나만을 위한 시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음미하는 여행을 스스로에게 선물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도시에서의 번잡한 삶을 뒤로 하고 가족과 함께 제주에 정착한 여성학자 오한숙희는 굳이 중년 여성을 콕 집어 기획한 프로그램의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마지막은 지중해 부럽지 않은 푸른 물빛과 백사장으로 유명한 협재해수욕장에서 참가자들 각자가 제주의 풍광을 찍은 '나의 한 컷'을 함께 보고 소감을 나누는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제주가 고향이라는 참가자는 제주 올레를 찾아준 육지 사람들이 고맙다며 이곳 명물이라는 보리찐빵을 돌렸다.
갓 쪄내 촉촉하고 보드라운 보리빵을 한 입 베어 물자 구수한 보리향과 질 좋은 단팥의 은은한 단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소설가 한창훈이 말했다. "인생이 허기질 때는 바다로 가라"고. 그러니까 일상에 쫓겨 허허해질 때 제주를 찾을 일이다.
노래처럼 그림처럼 아름다운 보리밭의 풍광과 함께 잊지 못할 제주의 추억이 또 하나 생겨버렸다. 5월의 제주는 참, 구수하니 맛도 좋다.
여행정보
삶의 쉼표가 필요한 여성을 위한 맞춤형 2박 3일 제주 올레 여행 프로그램.
자세한 일정과 프로그램 안내는 제주올레 공식 웹사이트(
www.jejuolle.org)에서 매월 공지된다.//'건강한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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