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어느 곳에 지명의 유래가 되었던 흔적들이 살아있을까마는 마을 문패로 남아있는 표지석 하나가 전부다.
아들 낳아 대를 잇고, 떠난 남편 무사귀환 빌며 돌 위에 돌을 붙이던 부암동엔 안평대군 집터가 있다.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 이용(李瑢)은 1447년 4월20일 박팽년과 무릉도원을 거니는 꿈을 꾼다.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애초에 눈을 상해 세상을 못 본 이는 흑백 꿈만 꾸고, 어릴 적 어미 품을 떠난 동자승의 꿈엔 여인이 없다.
세검정 아름다운 풍치 속 부암동 사저는 안평에게 무릉도원 속 초막이자 꿈이었다.
곧 부암동은 몽유도원도의 본향인 셈이다.
그런데 눈떠 보면 이 집터는 종종 신문지상에 오르락내리락하며 입방아에 오른다.
시끄럽게 다투어 판다는 경매(競賣)로 수모를 겪으니, 사약 받은 왕자 집터라 팔자가 세다는 풍문에 몸살도 치른다.
경매라는 단어는 형(兄) 두 명이 서서(立) 심하게 자웅을 겨루는 모양새다.
경기(競技), 경마(競馬)처럼 이겨야 살아남는 일본식 시장 경합 체제다.
따라서 다툼이 많이 일어나 경매에 처해진다는 것은 원만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한 번은 다툴 수 있다.
두 번도 타산지석이라 그럴 수 있다.
3회 이상 경매에 부쳐지는 부동산은 고개를 한번 갸우뚱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주거용 부동산은 그렇다.
경매위험요인 분석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낙찰을 받는 이유는 투자 대비 수익률이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격(price)적 접근이다.
문제는 미래의 ‘내재적 가치(value)’에 대한 부분이 결여된 상태로 낙찰을 받는다는 점이다.
즉 안좋은 결과의 반복적 상황은 낙찰자의 내부적 요인(건강악화, 재물손실, 불행요소 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서울지역 25개 자치구 중 주거용 부동산이 세 번째 이상 차수에서 낙찰되는 비율이 가장 높은 구는 은평구(17.1%)다.
2위는 양천구(15.5%), 3위는 강서구(7.4%)다.
이 낙찰 물건들의 입지를 분석해 보면 풍수학에서 말하는 흉지 요건에 부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산이 기운을 풀무질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과협처에 위치한 집들이 그렇다.
또한 산이 모습을 바꾸기 위해 박환하는 낙맥처 위에 바로 올린 집들이 그러하다.
이것은 산 자의 양택(陽宅)이 아닌 죽은 자의 음택(陰宅) 입지로 전원주택 입지 선정시 반드시 주의를 요한다.
그렇다면 3회 이상 경매에 올려진 안평대군의 집터는 어떠한가.
땅은 인간이 제한한 부동산 공법상의 용도를 떠나 각각의 땅의 성품대로 쓰이길 원한다.
안평대군의 집터는 역사가 묻히고 예술이 숨쉬었던 곳이다.
개인이 아닌 공공에 짙은 향기로 남길 바라는 땅의 마음을 서울시는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