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묻지 않은 외로운 외딴섬 ‘보령 외연도’
너무 다정하면 하늘도 시기한다고 했던가.
중국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외딴섬 외연도의 상록수림에 뿌리를 내린 '사랑나무'라는 이름의 동백나무 두 그루가 연리지가 돼 오순도순 살아온 지 수십 년. 어느 날 울창한 숲을 뒤흔드는 태풍의 질투에 안타깝게도 가지가 부러져 수명을 다했다.
하지만 사랑나무는 한 번 맺은 부부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듯 상처 입은 두 손을 맞잡은 채 화석처럼 굳어져가고 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연기에 가린 듯 희미하게 보인다는 충남 보령의 외연도(外煙島)는 맑은 날에도 옅은 해무에 둘러싸여 수줍음 타는 섬처녀를 연상하게 한다. 보령 앞바다에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는 70여 개의 섬 중 가장 먼 섬인 외연도는 대천항에서 서쪽으로 53㎞. 외연도는 0.53㎢의 작은 섬으로 175가구 350여 주민이 항구를 둘러싼 아담한 마을에 살고 있다.
고만고만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정담을 나누는 골목길 담장 곳곳에는 동백꽃, 나팔꽃, 꽃붕어 등 외연도의 풍경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친근감과 생동감을 더한다.
벽화는 외연도 어린이 22명의 그림을 모티브로 육지의 작가들이 그렸다.
외연도 여행은 외연초등학교 왼쪽에 위치한 당산(75m)의 상록수림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은 수령 500년의 아름드리 후박나무를 비롯해 동백나무, 팽나무, 고로쇠나무 등 상록활엽수와 낙엽활엽수가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나무 데크를 따라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상록수림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전횡 장군 사당이 반긴다.
중국 제나라 왕의 아우였던 전횡 장군은 한나라에 맞서 싸우다 패하자 부하 500여명을 이끌고 외연도로 도망온다.
그러나 뒤쫓아 온 한나라 군사들이 항복하지 않으면 섬 전체를 토벌하겠다고 위협하자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될 것을 우려해 부하들과 함께 한나라로 들어가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외연도 주민들이 전횡 장군의 사당을 짓고 수백 년째 당제를 지내는 이유다.
외연도를 상징하는 사랑나무는 상록수림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서로 다른 뿌리에서 자란 두 그루의 동백나무가 신기하게도 공중에서 가지가 맞닿은 연리지로, 예로부터 사랑하는 남녀가 이 나무 사이를 통과하면 결실을 맺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하지만 2010년 태풍 곤파스가 외연도를 강타하면서 가지가 부러져 외과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고사하고 말았다.
외연도는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가고 싶은 섬' 사업 선정으로 몰라볼 만큼 달라졌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고 여행객 편의를 위해 당산에서 큰명금을 거쳐 노랑배에 이르는 2㎞ 구간에 목재데크를 설치했다.
경관 포인트마다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 자연친화적 안내판도 만들었다.
봉화산(279m)과 망재산(171m) 등산로도조성돼 정상에오르면 15개 섬으로 이루어진 외연열도가 전후좌우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봉화산과 당산 자락이 만나는 '바람의 언덕'은 찔레꽃이 만발한 푸른 초원으로 명금해변과 마을을 연결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반원 형태의 명금해변은 상투를 닮은 상투바위, 두 마리의 매가 날개를 웅크린 형상의 매바위, 햇빛에 반짝이는 몽돌이 금처럼 보이는 큰명금과 작은명금, 뱃머리를 연상하게 하는 해안절벽이 노란색으로 빛나는 노랑배 등을 품고 있다.
명금해변은 보는 위치와 시간에 따라 느낌이 사뭇 다르다.
당산과 명금해변 중간에 위치한 '바람의 언덕' 전망대에서 봉화산 산허리를 가로질러 노랑배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약 1.5㎞ 길이의 탐방로는 명금해변과 대청도·중청도, 그리고 망망대해의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 찔레꽃 향기 그윽한 탐방로를 걷다 보면 명금해변의 시리도록 푸른 풍경이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크루즈 유람선의 뱃머리를 연상시키는 노랑배 전망대는 외연도 최고의 일몰 감상 포인트. 상투바위와 매바위 사이 뒤로 보이는 대청도와 중청도가 중중첩첩 수묵화를 그린다. 이윽고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은색에서 황금색으로 옷을 갈아입을 때쯤 외연도의 황홀한 일몰이 시작된다. 태양이 서서히 고도를 낮출수록 바다는 화염처럼 붉어지고 작은 어선의 검은 실루엣은 짙은 고독
속으로 침잠한다.
최근 등산로가 개설되면서 외연도에는 주변의 섬을 한눈에 조망하는 새로운 명소가 탄생했다.
수백 개의 까나리액젓 통에서 짭조름한 바다냄새가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마을 서쪽 길을 선택하면 이내 성재산 오른쪽 자락의 등산로를 타게 된다. 시누대 터널을 지나자 누적금 앞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가파른 능선을 타고 오른다. '금'은 해변 양쪽의 기암절벽 사이에 형성된 작은 만으로 외연도에는 누적금을 비롯해 고라금, 기풍금 등이 서로 절경을 다툰다.
누적금을 내려다보며 망재산의 가파른 산허리를 도는 등산로는 서쪽의 고래조지에서 드넓은 초원과 바다, 그리고 섬으로 이루어진 이국적 풍경을 만난다. 고래조지는 암벽에 세로로 길게 누런색을 띠고 있는 바위로 고래의 성기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주변의 초원은 외연초등학교 학생들의 가을소풍 장소로 유명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외연도 주민들은 이웃은 물론 부모와 자식이 모두 선후배 사이. 당연히 손바닥만한 섬에서의 소풍 등 자잘한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다.
이른 아침 고래조지에서 만나는 외연열도의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나 다름없다. 석도, 당산도, 오도, 외오도, 외횡견도, 횡견도, 황도, 대청도, 중청도 등 외연도를 둘러싼 크고 작은 섬들이 옅은 바다안개를 뚫고 우뚝우뚝 솟아 있다. 그 섬들 사이로 외연도의 부지런한 어선들이 파도를 가르며 풍경화의 주인공이 된다.
국민일보 :외연도(보령)=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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