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90分 걷기 5선
12시엔 걷자 숲길·물길·꽃길로
주말매거진팀이 추천하는 코스 5
예술의 세계로 빠져든다… 걷고, 쉬고, 보았을 뿐인데
- 이화벽화마을의 유명한 잉어 그림 계단.
솔깃했다.
'지하철 아트밸리'라니. 동대문 근처 직장인들 사이에서 '조용히' 소문나는 중이라고 했다.
설명인즉슨, 지하철 4호선은 최신 트렌드의 디자인·문화예술 세계와 이어주는 중요한 '문'이란다.
최근 문을 연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그 기폭제가 됐다.
DDP와 바로 연결되는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과 대학로와 맞닿아있는 혜화역,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성북구 갤러리 촌으로 향하는 한성대입구역을 잇는 곳이 바로 '4호선 아트밸리'다.
특히 혜화역엔 서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낙산공원이 있어 근처직장인들뿐만 아니라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간다고 했다.
하루는 저녁 시간을 이용해 DDP 관람을 더했고, 다른 하루는 점심때를 맞아 DDP를 제외하고 다녔다.
그냥 걷고 보았을 뿐인데, 무언가 풍성한 한상차림을 받은 듯한 느낌이다.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쇳대박물관 쪽으로 올라가면 '낙산공원'이란 표지판이 보인다.
쇳대박물관 옆에 있는 이탈리안 음식점 '핏제리아 오'는 최근 가장 '핫(hot)'하게 뜨는 맛집이다.
'주말용 코스'로 넣어야겠다.
낙산공원까지 오르는 길은 아스팔트 길이지만 경사가 심하기 때문에 '하이힐'은 삼가는 게 좋다.
낙산공원 내의 낙산정에 앉아있으면 정말 세월 가는 줄 모른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것이 왠지 구름 위에 떠있는 기분이다.
공원 주차장 길로 내려오다 보니 '이화마을'이란 표지판이 보인다.
벽화로 유명한 곳이다.
몇년 전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천사 날개 벽화 앞에 사진 찍는 모습이 방영된 이후 커플들이 '신고식'하듯 다녀간 곳이다.
최근엔 웨딩 사진 촬영장소로도 인기다.
그래서인지 곳곳마다 중국 관광객들이 잔뜩이었다.
동숭아트센터를 지나 지하철역까지 다시 내려간다.
'연극을 보러오라'는 대학생들의 손짓이 싱그럽다.
길거리 공연 하는 이들에게서 생동감이 솟아난다. 농축된 젊음의 기로 세례받은 기분이다.
도로를 따라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에 당도했다.
2분 거리에 '서울 5대 빵집'이라는 별칭의 '나폴레옹 과자점' 본점이 있다.
5번 출구는 공사 중이었는데 정면 6번 출구 오른편 4번 출구를 확인하면 된다.
이곳에서 빵을 사서 혜화문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동네주민들이 '혜화문공원'이라고 부르는 쉼터가 나온다.
음식을 먹고 쉬어갈 수 있는 '아지트'다.
바로 앞에 '갤러리 버튼' 등 몇몇 갤러리가 있다.
인근엔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혜화동 길'을 주제로 최근 선보인 재능교육혜화문화센터가 있다.
- 나폴레옹 과자점 잣 호두 타르트.
점심은 여기서
나폴레옹 과자점의 대표 제품인 사라다빵(3500원)과 가평잣 호두타르트(5700원)를 샀다.
사라다빵은 평범한 듯 중독성 강한 맛이다.
타르트의 고소함이 오래간다.
(02)742-7421 바로 옆집인 블루오 파스타에서 테이크아웃하는 것도 좋다.
생면과 소스('아라비아따' 7500원·'까르보나라' 7500원)를 취향에 따라 골라 담을 수 있다.
빵이나 파스타가 싫다면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200m 정도 거리에 있는 '국시집'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국시 9000원, 수육 2만8000원.
걷기 정보
혜화역으로 돌아오는 대신 혜화문에서 성북로를 따라 주민센터를 지나면 최순우 옛집, 조지훈 집터 등을 비롯해 간송미술관,
성북구립미술관 등 '예술 투어'를 좀 더 할 수도 있다.
12시엔 걷자 숲길·물길·꽃길로
주말매거진팀이 추천하는 코스 5
서울 참 예쁘다, 이 거리가 말해주네요
- 경복궁 돌담을 따라 청와대로 올라가는 길.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걷기 좋은 길이다.
자연(自然)보다 인간이 만든 문명(文明)을 사랑한다.
여행을 가도 산·바다보단 도시의 빌딩숲을 선호한다.
산을 오르기보단 도심을 걷고 싶었다.
1시간 30분 안에 땀이 날 정도로 걷고 점심도 해결할 수 있는 코스를 짜봤다.
이름하여 '서울 다시 보기 걷기코스'. 경복궁, 청와대, 인사동, 청계천 등 관광명소를 도는 코스다.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라면 한국인이 걷기에도 즐거우리라.
12일 오전 11시 30분, 세종대로 사거리 동화면세점 앞 광장에서 출발했다.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정부청사를 끼고 좌회전하면 효자동 쪽으로 건너가는 횡단보도가 곧 나온다.
이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경복궁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돌담을 오른쪽에 두고 빠르게 걸으면 청와대가 보인다.
청와대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한다.
돌담을 따라 계속 걷는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그래, 서울이 꽤 예쁘고 볼만한 도시지'라는 생각이 든다.
- 삼청동 ‘메조디파스타’에서 자체 제작한 독특한 모양의 파스타는 눈으로 보는 맛도 있다.
청와대 춘추관 옆으로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골목이 있다.
골목 어귀 공근혜갤러리가 이정표가 된다.
곧 총리공관이 왼쪽에 나타난다.
우회전해 삼청로를 따라 걷는다.
우리은행 옆에 점심을 먹을 '메조디파스타'가 있다.
삼청파출소 앞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북촌로5가길이다.
카페, 옷집 등 작고 예쁜 가게가 가득해 눈과 마음을 홀리기 십상이니, 점심시간 안에 회사에 복귀하려면 정신 단단히 차려야 한다.
곧 아트선재센터가 보인다.
센터 옆 율곡로3길을 따라 걷는다.
덕성여중과 여고 사이를 지나면 안국동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면 인사동이다.
지팡이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먹는 관광객, 데이트 나온 연인들로 북적북적하다.
여유로운 이들 사이로 정장 입고 운동화 신은 남성이 땀까지 흘리며 걷고 있으니, 이상하게 쳐다보는 게 당연하다.
종로2가 사거리를 지나 계속 직진하면 왼쪽으로 산업은행이 1층에 있는 삼일빌딩이 나오고, 그 앞에 청계천이 흐른다.
계단을 이용해 청계천으로 내려간다.
점심 먹고 걷는 직장인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구나' 안도감이 든다. 물 흐르는 소리가 상쾌하다.
청계광장에서 지면 레벨로 올라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동화면세점 광장이다.
점심은 여기서
지난 3월 삼청동에 문 연 프랑스 파스타 전문점 '메조디파스타'는 이탈리아에서 공수한 파스타 생면(生麵)을 사용한다.
흔히 사용하는 딱딱한 건면(乾麵)과는 다른 식감인 데다, 삶는 시간이 3분 30초로 훨씬 짧다. 그만큼 식사 시간이 절약된다.
새거나 젖지 않는 종이컵에 담아주니, 바쁘면 테이크아웃해서 걸으며 먹어도 된다.
7가지 소스 중 하나, 7가지 파스타 중 하나를 고르고, 두 가지 치즈 중 뭘 뿌릴지 정하면 끝.
스탠더드 사이즈 7000~8500원에 1000원을 추가하면 소프트음료가 딸려온다. 프랑스에서 공수한 반죽으로 만든 크루아상·뱅오쇼콜라 등 페이스트리(각 1800원)는 가격 대비 품질이 매우 훌륭하다. (02)6328-3445
걷기 정보
경복궁 돌담 맞은편 길도 걷기 좋지만, 정오를 조금 앞둔 시간대에는 돌담 쪽에 그림자가 드리워 더 시원하다.
인사로의 인파를 헤쳐나가기 짜증나면 조계사 앞을 가로지르는 우정국로를 선택해도 좋다.
이 길을 쭉 걸으면 광교가 나온다. 거기서 좌회전하면 청계광장 방향이다.
12시엔 걷자 숲길·물길·꽃길로
주말매거진팀이 추천하는 코스 5
유모차 끌고도 편한 길 지나면… 금세 야생의 매력 폭발하네
- 안산 자락길의 나무 데크길.
서대문구 안산(鞍山·296m) 자락에 산 지 11년째다.
출근 전 새벽 산행이나, 주말 산책을 즐긴 지도 같은 시간이 흘렀다.
점심 시간 조금 더해 인왕산이나 북악산 '등정'을 마쳤다는 광화문 동료들의 무용담을 들으며, 자주 팔이 안으로 굽는 경험을 했다. 안산이 조금 더 나은데. 꼭대기 봉수대의 전망은 북악산·인왕산보다 빼어나고, 하산길 영천시장은 서촌보다 맛나며, 무엇보다
'휠체어'나 '유모차'도 오를 수 있는 총연장 7㎞의 나무 데크까지 완공됐는데….
대학생들에게는 연대 뒷산, 이대 뒷산으로도 불리는 이 산의 또 하나 매력은 매우 다양한 출발점을 가졌다는 것.
이날은 3호선 독립문역 5번출구에서 시작한다.
서대문구 의회, 한성과학고를 지나 한 10분쯤 오르막을 견디면 아스팔트길이 끝나고, 걷기 좋은 산책로가 시작된다.
안산 자락길이다.
극동·삼호·뜨란채 아파트로 이어지는 이 편평한 산책로에서, 안산으로 올라가는 나무 데크도 시작된다.
안산 자락 곳곳을 잇고 있는 이 목재 데크·친환경 마사토길은 지난해 11월 완공됐다.
폭 2m의 나무길을 걸으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서울의 풍광을 만끽한다.
메타세쿼이아·잣나무·가문비 나무가 5월의 초록과 연두를 펼쳐내는데, 특히 아카시아가 뿜어내는 달콤함에 정신이 혼미하다.
정상 등정에 의지가 없는 당신이라면, 표지판 잘 되어 있는 이 나무 데크만 즐기다 내려와도 좋다.
하지만 안산의 명물인 봉수대를 확인하고 싶다면 탈주할 것. 봉수대까지 680m가 남았다는 표지판을 확인한 뒤 데크에서 내린다.
데크가 안락한 도시라면, 봉수대 오르는 길은 자연이자 야생이다.
경사를 버거워하는 당신을 위해 파이프 기둥과 밧줄도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친절한 표지판의 데크와 달리, 이정표도 그리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레 포기하지는 말 것.
봉수대 방향은 무조건 위쪽 길이고, 헛갈린다 싶으면 로컬 정보 가득한 '동네 산악인'들이 종종 출현하니까.
데크를벗어나 10분을 걸으면 빼어난 경관을 볼수있는 전망대가 나타나고, 그 전망대에서 다시 5분을 치고올라가면 정상, 봉수대다. 서울시 기념물 제13호인 이 봉수대는 조선시대 연기와 횃불로 적의 침입이나 위기를 알렸던 곳.
안산의 봉수대는 함경도와 평안도의 경보(警報)를 서울 남산에 알리는 마지막 봉화였다.
지금은 360도 전망을 자랑하는 서울 최고의 조망대이기도 하다.
이제 표지판을 따라 능안정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이쯤 되면 이마와 겨드랑이에는 땀이 촉촉. 영천시장 목포집의 김치물국수를 떠올리며 열기를 누른다.
능안정을 지나 200m쯤 걷다 보면 또 하나의 안산 전망대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한 뒤 본격 하산을 시작한다.
10분 정도 내려가면 삼호아파트로 이어지는 계단이 등장한다.
이제 곧 영천시장. 빙수처럼 얼음 갈아 만든 시원한 물국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점심은 여기서
영천시장 뒷골목의 '목포집'. 원래 홍어 전문점인데, 점심에는 김치물국수(5000원·사진)가 예술이다.
조미료 없이 갈아 넣은 양파·대파와 마늘로 특유의 달고 시원한 맛을 완성했다.
어른 엄지손가락만 한 대추와 무 장아찌, 김, 계란지단을 고명으로 얹었다.
단, 시장 특유의 허름함은 감수할 것. 홍어 삼합 4만원, 삼겹살 9000원. (02)363-5010
걷기 정보
삼호아파트로 내려가는 계단은 인내와 참선의 시간. 짐짓 세어보니 127계단이었다.
12시엔 걷자 숲길·물길·꽃길로
주말매거진팀이 추천하는 코스 5
도시락 먹는 재미에 푹… 꿈같은 1시간이 후딱
- 경복궁역에서 20분만 걸으면 안평대군이 사랑했던 절경(絶景) 수성동 계곡이 나온다.
- 점심을 먹고 계곡의 정자에 걸터앉으면 왕자도 부럽지 않은 기분이다.
"산책이라고 함은 정해진 목적 없이…/ 별렀던 일 없이 줄을 끌러 놓고 가야만 하는 것."
인디 팝듀오 가을방학의 노래 '속아도 꿈결'의 한 자락이다. 맞다.
산책은 이런 것이다.
쏟아지는 일 때문에 당겨진 실처럼 팽팽한 정신줄을 잠시 놓자. 점심때만이라도 잠시 꿈결 같은 산책길에 속아보는
것도 좋다.
일단 경복궁역 2번 출구 앞에 서자. 큰길을 따라 500m쯤 걸어가다 보면 통인시장이 나온다.
이 산책의 첫 유혹은 이 시장 명물인 도시락 카페. 시장에서만 통용되는 엽전(개당 500원)을 구입한 뒤 빈 도시락통을 들고 가게를 돌아다니며 맘에 드는 반찬을 고르고 엽전을 준다.
반찬당 엽전 1~2개면 살 수 있다. 반찬을 고른 뒤 시장 내에 마련된 카페에서 밥과 국(각 1000원)을 사서 먹으면 된다.
이 재미에 빠지면 산책은 여기서 끝이다.
시장의 유혹을 이기면 옥인동 골목길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도 곳곳에 복병이다.
플로리스트가 가꾼 꽃이 있는 카페, 핸드메이드 빈티지 액세서리 가게 같은 곳에 한번 눈길을 줬다가는 눌러앉기 십상이다.
남정 박노수 화백의 가옥을 갤러리로 꾸민 박노수 미술관도 있다.
박 화백의 평생 화업과 고미술품, 40년간 꾸민 정원을 보다 보면 컴퓨터 모니터에 지친 눈의 피로가 절로 풀린다.
옆길로 새지 않고 골목길을 따라 나오면 수성동 계곡이 기다리고 있다.
풍류를 아는 왕자 안평대군이 집을 짓고 살았고, 겸재 정선도 '장동팔경첩'에 담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계곡 중간에 있는 정자에 앉아 물소리를 들어보자. 그들이 이곳을 사랑했던 이유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왔던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배화여고 방향으로 방향을 살짝 틀면 체부동 홍종문 가옥이 나온다.
서울시 민속자료로 지정된 전통 한옥이다.
큰길을 건너 통의동 서촌 한옥마을도 한 바퀴 둘러보면 꿈결 같은 산책도 막바지다.
서촌은 개화기에 소설가 이상 같은 예술가들이 살았던 곳. 한옥도 1910년대 이후 대량으로 지어진 개량 한옥이다.
회벽 대신 콘크리트 담이 있고, 기와와 양철 지붕이 맞붙어 근현대와 과거가 뒤섞인 모습이 정감 간다.
이곳에서 이상의 단편 '봉별기'의 구절을 떠올린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 질러 버려라.' 맞다.
산책의 꿈에서 깨니 마음에 불이 타오른다. 오후도 힘차게 일해볼까!
점심은 여기서
수성동 계곡 초입에 있는 건물 1층에 '누각'이라는 작은 음식점이 있다.
좌석은 10석 남짓. 주문하면 주인이 손님에게 훤히 보이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 준다.
대표 메뉴는 국수와 엄나물주먹밥. 명태로 낸 육수에 면을 말아서 내는 국수는 혀에 감기는 감칠맛이 있다.
쌉싸래한 맛의 엄나물에 간장으로 양념한 주먹밥은 국수 맛을 더 돋운다.
수·목요일에는 국수와 주먹밥 대신 수수밥에 홍합, 표고, 된장취나물을 섞은 비빔밥이 나온다.
국수와 주먹밥 6500원, 비빔밥 9000원. (02)722-4541
걷기 정보
이 산책 코스를 100% 즐기고 싶다면 월요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통인시장 도시락 카페, 박노수 미술관 등 이 코스에 있는 많은 명소가 월요일에는 열지 않는다.
힘들게 걷는 일 없이 한달음에 수성동 계곡에 안착하고 싶다면 경복궁역에서 종로 9번 마을버스를 타면 된다.
종점에서 내리면 바로 앞이 수성동 계곡이다.
빌딩 숲 벗어나 강남 한복판 숲길… 점심 후 나른함 날려보자
강남에도 숲이 있다.
빌딩 숲이 아니다.
서울 삼성동에 있는 선·정릉이다.
코엑스와 한국종합무역센터가 있는 2호선 삼성역 5번 출구에서 테헤란로를 따라 750m쯤 직진하면 포스코 사거리가 나온다.
길을 건너 두 블록을 지나 우측 골목으로 들어가면 난데없는 부채꼴의 녹지가 하나 보이는데, 선·정릉이다.
강남 노른자위 땅에 있는 약 20만㎡(6만평)짜리 이 거대한 숲에 들어서면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백목련이나 산딸나무에 핀 뽀얀 꽃송이를 감상하거나 아름드리 향나무·참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양껏 들이마시며 걸으면 점심
식사로 무거워진 몸이 산뜻해진다.
지천이 소나무고, 풀이라 시력이 돌아오는 기분이다.
울창한 나무가 직사광선을 가려 조명도 좋다.
한옥보기힘든 강남에서 재실(齋室·능이나 종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지은집) 같은 전통 가옥은 소풍 온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재실 옆엔 500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다. 24m로 웬만한 건물 높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능침 앞에 이르면 정자각(丁字閣)을 향해 쭉 뻗은 돌길이 두 개 있다.
신도(神道)는 왕릉에 묻힌 왕과 왕비의 혼령이 다니는 길이라 밟으면 안 되고, 산 사람은 바로 옆에 있는 어도(御道)로 걸어야 한다. 능 3개를 둘러보는 데 30분 정도 걸린다.
입장료를 아끼고 싶다면 능 바깥쪽을 감싼 일명 '둘레길'을 걸어도 좋다.
이곳을 걷다 보면 운동화를 신고 걷기에 열중하는 인근 교회 수녀님이나 회사원을 자주 마주할 수 있는데, 2㎞ 정도 이어진 보도는 우레탄으로 돼 있어 푹신하고, 철 울타리 너머 잘 정돈된 녹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주기적으로 파도치듯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대퇴부에 적당한 긴장을 준다.
고즈넉한 골목길에 카페도 들어서 있으니 차 한잔하기 좋은 분위기다.
![](http://image.chosun.com/mz_img/2014/05/0515_1_big2.jpg)
점심 무렵 한 직장인이 양복에 스니커즈 차림으로 서울 삼성동에 있는 선·정릉을 걷고 있다.
둘레길을 돌고, 봉은사로를 따라 15분쯤 걸으면 봉은사가 나온다.
맞은편 코엑스의 휘황찬란한 외관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 이 절은 신라시대에 창건돼 역사만 1200년이 넘었다.
조선시대 성종의 계비였던 정현왕후가 성종과 중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선·정릉의 원찰(願刹)로 삼았다고 한다.
선릉에서 봉은사를 돌아 코엑스까지 거리가 2㎞ 정도인데, 직장 상사의 닦달을 피하려면 경공술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점심은 여기서
가릿국밥. 갈비와 양지로 육수를 내 선지·
양지·두부를 곁들인 함흥식 국밥이다.
대치동 포스코 빌딩 뒤편 '반룡산'이라는 북한 함흥 음식 전문점이 있다.
주력 음식은 '가릿국밥''<사진>이다.
'가릿'은 함경도 말로 갈비를 뜻하는데, 갈비와 양지로 육수를 내 선지·양지·두부를 곁들인 함흥식 국밥이다.
국물은 목 넘김이 부드럽고 시원해 해장에 그만이다.
어른 손바닥만 한 왕만두도 유명한데, 두부와 호박, 숙주나물, 닭고기, 돼지고기를 으깨 반죽한 소가 푸짐하다.
가릿국밥 8000원, 왕만두(5점) 7000원. 서울 강남구 대치동 894-4번지. (02)3446-8966
걷기 정보
조선 9대 임금 성종과 11대 임금 중종, 정현왕후가 묻힌 선·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음료는 마실 수 있지만, 도시락을 싸와 식사를 할 순 없다.
입장료는 성인 1000원이지만 '점심시간 관람권'을 끊으면 10회 입장에 3000원이다.
입장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매주 월요일엔 문을 닫는다.//
자료제공: 조선일보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