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유학자의 길'- 심학산, 자운서원, 화석정, 파산서원
生과 死를 지나 이어지는 길, 그것이 선비의 道
- 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1615년 창건된 ‘자운서원’. 앞쪽 건물은 유생들이 묵던 일종의 기숙사인 동재(東齋)와
- 서재(西齋)다. 동재엔 양반, 서재엔 평민·서얼이 묵었다. 정면에 보이는 ‘강인당’에서 강학이 열렸다.
길에서 누가 "도(道)를 아십니까" 묻는다면, 일단 도망치는 게 맞다.
TV에서 김보성이 아무리 "의리!"를 외쳐도 공허할 따름이다.
공자가 아침에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한 '도'라곤 해도, 사람됨의 기본이라는 의(義)와 리(理)라 해도 사이비가 많은 탓이다.
그럼에도 심중에 이 두 자를 골몰하게 된다면, 하루쯤 선비의 마음으로 걷고 싶다면, 갈 길이 있다.
경기도 파주에 조성 중인 이른바 '유학자의 길'이다.
평생의 친구 구봉 송익필과 우계 성혼, 율곡 이이의 우정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파주, 서인(西人)의 땅
군부대의 총성, 임진각에 선 실향민을 떠올리기 쉽지만, 파주는 숱한 조선의 흔적을 품는다.
파주에 있는 총 37개의 경기도지정문화재 중 27개가 조선시대 것인데, 특히 조선 중기에 기운이 가장 흥했다.
붕당 정치의 복판에서 서인의 주 무대였기 때문이다.
서인의 삼현(三賢)으로 추앙받는 구봉과 우계, 율곡도 이곳에 살며, 살던 곳의 지명을 호(號)로 삼았다.
- 우계 성혼의 위패를 봉안한 ‘파산서원’전경. 임진왜란과 6?전쟁 때 소실돼 1966년 사당만 복원했다.
- 서원 앞 고목은 여전히 살아있다.
여정의 처음은 심학산으로 한다.
구봉 때문이다.
파주출판단지를 껴안은 194m의 야트막한 이 산의 옛 이름이 바로 구봉산(龜峰山)이다.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구봉은 천출(賤出)이었고 가난했으나, 사계 김장생이 평생 스승으로 모실 정도로 학식이 높았다.
선비의 낮은 어깨처럼 산은 엎드린 거북 모양이다.
정상까진 30분이면 돌지만, 2009년엔 능선을 따라 7㎞의 둘레길이 조성돼 2시간 정도의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둘레길은 폭이 1.5m 정도로 경사가 급하지 않고, 흙은 부드럽다.
구봉의 시 역시 그랬는데, 허균이 "어찌 인간의 말이라 하겠는가"며 찬탄했을 정도로 유려했다.
정상에 올라, 구봉이 내려다봤을 임진강과 파주 평야의 풍광을 눈에 담는다.
우계는 지금의 파평면, 율곡은 옆 동네 법원읍에 살았다.
심학산에서 파주역을 지나 20여분 달려야 닿는 곳이다.
생가는 없어도 흔적은 남았다.
월롱산 기슭 용주서원으로 간다.
1598년 백인걸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이 세운 서원이다.
우계와 율곡은 청백리였던 백인걸 밑에서 동문수학했다.
서원 앞에 마침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거닐다 보면 '동몽선습'이라도 한 권 펼치고 싶은 기분이 된다.
◇도가 있으면 나아가고, 없으면 물러나 숨는다
통일로를 타고 문산 방향으로 15분쯤 달리면 임진강 허리에 닿는다.
여기 '화석정'이 있다.
율곡이 벗들과 함께 시를 짓고 학문과 음식을 나누던 정자다.
6·25전쟁 때 불타 1966년에 새로 지었는데, 현판 글씨를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
화석정 옆에서 560년 된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운다.
화석정 매점을 운영하는 신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의 16대 후손 신동균(78)씨도 22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다.
묵묵히 제 자리 지키는 고마운 풍경이다.
정자 안 편액엔 율곡이 여덟 살 때 지었다는 '팔세부시'(八歲賦詩)가 새겨져 있다.
'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임진강이 느릿느릿 획을 늘인다.
- 임진강에서 잡은 참게를 아귀찜 양념에 버무려 쪄낸 ‘참 게범벅’
화석정 지척에 임진나루가 있다.
매년 10월 축제를 열 정도로 참게가 유명하다.
차로 5분쯤 달려 '임진 대가집'에 닿는다.
만화가 허영만이 그린 '식객'에 등장하는 맛집이다. '참게범벅'을 주문한다.
아침 통발로 잡아올린 참게를 담수에서 잡물을 빼 아귀찜 양념에 찐 것이다. 매콤하고 달달한 것이, 미나리·콩나물 등속과 버무려져 독특한 향취를 낸다. 참게를 간장에 담근 '참게장'도 짜지 않고 살맛이 선명하다.
선비들은 화선지를 펴 게를 즐겨 그렸는데, 게 껍질을 뜻하는 '갑'(甲)이 과거 급제를 뜻하기 때문이다.
게의 별명은 횡행개사(橫行介士), 임금 앞에서도 할 말 하는 강직한 선비다.
게딱지를 비우고, 과거 급제만 아홉 번 했다는 율곡의 자운서원으로 간다.
율곡은 세 지음(知音) 중 유일하게 벼슬에 적극적이었다.
그의 위패 앞에 방명록이 놓여 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훌륭한 위인이 되겠습니다'라거나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글이
쓰여 있다. 그 밑엔 아버지가 '두 아들이 위의 글처럼 돼가는지 지켜보겠다'고 남겨놨다. 율곡의 초상화가 웃는 얼굴이다.
근처 파평리엔 우계를 기리는 '파산서원'이 있다. 화석정에서 37번 지방도로를 타고 10분쯤 올라가면 나온다.
조선 말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인데, 지금은 거의 방치돼 있다시피 하다.
건강이 좋질 않았던 우계는 벼슬을 탐탁지 않아 했다.
서원에 당도하면, 가장 먼저 앞뜰 앞에 버티고 선 거대한 고목(古木)을 마주하게 된다.
죽었나 싶지만, 나무 오른쪽 옆구리에 이파리가 하나 올라와 있다. 새순이다.
◇묻혀서도 이어지는 유학의 길
무덤은 사람의 생전을 비춘다.
우계와 율곡의 무덤 모두 파주에 있다. '파주이이유적'안에 율곡 가족묘가 있다.
13기의 묘 중 율곡이 가장 꼭대기에 묻혔다. 그 밑엔 이이의 맏형, 그 밑에 아버지 이원수와 신사임당의 합장묘가 있다.
자식이라도 부모보다 벼슬이 높으면 위에 묻었고, 그게 예(禮)였다.
364번 지방도를 타면 채 10분이 안 걸리는 곳에 우계의 묘도 있다.
병약했던 우계는 유언으로 "묘비에 이름과 본관 다섯 글자만 넣으라"는 말을 남겼다. 아들은 여기에 세 자를 첨했다.
구봉은 전국을 떠돈 터라 심학산 어디에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으나, 1991년 후손들이 심학산 밑자락 산남동에 그를 기리는
유허비(遺墟碑) 하나를 세웠다.
선비의 봉분 앞엔 문인석 한 쌍, 비석 하나가 전부지만 뜻은 이어진다.
무덤가에 하나같이 엉겅퀴나 민들레 같은 풀꽃이 돋아 있다. 그것들이 저마다 자꾸 씨를 날린다.
파주이이유적은 자운서원과 율곡 가족묘, 율곡 기념관을 모두 품고 있다.
입장료 1000원, 오전 9시~오후 6시, 월요일 휴관. (031)958-1774
참게범벅은 임진나루 근처 참게 요리로 유명한 '임진 대가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크기에 따라 6만5000~8만5000원. '참게장'은 한 마리씩 판다. 1만8000원. (031)953-5174
파주 유적 조선의 명재상 황희의 묘, 황희가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 삼아 만년을 즐긴 반구정을 포함해 구암 허준 묘, 파주향교, 교하향교 등 파주엔 조선의 역사와 관련된 유적이 많다.
문의 파주시청 문화관광과. (031)940-4358
'건강한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太白의 들꽃 (0) | 2014.05.24 |
---|---|
부산 九景 (0) | 2014.05.23 |
서울 90分 걷기 5선 (0) | 2014.05.20 |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 (0) | 2014.05.17 |
부산 절영해안산책로 (0) | 2014.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