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사려는 사람이 많으면 값은 올라간다.
부자들이 관심을 갖는 자산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더 올라갈 확률이 높은 것도 그래서다.
코스피 지수가 1300 선을 돌파했다. 시장에는 벌써 낙관론이 흥건하다. 돈을 어딘가 굴리고 싶은데 아직 길을 못 찾는 이도 많다.
이럴 때 유용한 게 ‘부자 따라 하기’다. 부자들의 돈을 굴리는 프라이빗뱅커(PB)들에게 요즘 부자들의 관심사를 들어봤다. 우리투자·삼성·한화·한국투자·대우·굿모닝신한증권 및 하나·우리·외환·신한은행 등에서 자산관리 규모가 1000억원 이상인 PB 59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믿을 건 그래도 부동산‘부동산 불패’ 신화는 여전했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PB(32명)가 요즘 부자들은 여전히 부동산을 가장 유망한 투자처로 꼽는다고 답했다.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는 예측을 부자들은 무시했다. 경제 예측 기관들은 2015년부터 아파트 가격이 본격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줄줄이 내놨다. 인구가 줄기 때문이란 것이다.
예컨대 일본은 1990년을 전후로 주택 수요층인 40~50대 인구 비중이 줄어들면서 부동산 시장이 침체했다. 국내 40~50대의 인구 비중은 2015년을 전후해 줄기 시작한다.
그러나 부자들에게 이런 주장은 단지 이상이요, 논리일 뿐이다. 현실은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부자들의 부동산 선호 경향을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다만 선호하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아파트 일변도에서 사랑의 중심 축이 옮아갔다. “주거용보다 상업용 부동산”(하나은행 PB), “강남권 중심의 빌딩 매입”(한국투자증권), “30억원대의 상가”(한화증권) 등 부자들은 최근 임대수익형 부동산에 관심을 집중했다. 아파트처럼 시세차익을 노리기보다 안정적으로 수익이 나오는 부동산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부동산에 관심이 많다 보니 경기·기업실적·환율 등 보통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재테크 뉴스 이외에 세제 개편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부동산 관련 세제 완화 및 투기 억제 정책의 완화”(한화증권), “강남 3구 투지지역 해제는 언제 시행될까”(굿모닝신한증권) 등이 부자들이 관심을 가진 뉴스다.
주식 투자에는 아직까지 신중하다. 소액으로 대형 우량주를 분할 매수하면서 본격적인 기회를 탐지하는 정도다. 주식보다는 채권을 많이 찾는다. 그렇다고 국·공채는 아니다.
고금리 회사채에 관심을 보인다. 안정성 못지않게 수익성을 많이 따진다는 의미다. 특히 주식시장에 발을 반쯤 걸친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에 흥미를 보인다. CB나 BW는 다른 채권보다 금리는 낮지만 향후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바꿔 추가 수익을 노릴 수 있다. 최근 기아차·코오롱·아시아나항공 BW에 몰린 개인자금은 총 2조2760억원에 달했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외화표시채권도 부자들 사이에서는 인기다. 이것은 국내 대기업이나 은행들이 외화를 조달하려고 해외에서 발행한 채권이다. 수익률이 연 20%까지 나올 정도로 높지만 쉽게 구할 수 없고 고액 단위로만 사야 한다는 게 흠이다.
유가 등 원자재 관련 상품에도 관심이 높았다. 경기가 바닥을 찍고 돌아서면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는 게 원자재다. 국제유가는 최근 두 달 새 30달러 선에서 50달러 선으로 뛰었다. 삼성투신운용이 내놓은 원유 관련 펀드는 출시 두 달도 안 돼 200억원이 넘게 팔렸다.
투자 시기 저울질부자들의 돈은 무겁다. 천천히 움직인다. 본격 행동에 나서기보다는 일단 저울질이 먼저다. “현금성 자산이 최고의 투자처”(우리은행), “투자 기회를 엿보기 위해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넣어 둔다”(한국투자증권)는 등 부자들은 기다리는 데 능숙하다. 한때 머니마켓펀드(MMF) 설정액이 130조원 넘게 불어났던 것도 그런 대기성 자금이 몰려서다.
슬슬 부자들의 움직임이 감지되기도 한다. MMF 설정액은 최근 5조원 정도 줄었다. “이달 들어 투자 문의가 계속 들어오고 있는”(한화증권) 분위기다. 과감히 움직이기 시작한 부자들도 있다. PB들은 “이미 투자를 시작했다”(우리투자증권), “대부분의 자산이 저평가돼 있는 지금이 투자 적기”(하나은행), “지금이라도 시장 참여를 고려해야 한다”(한국투자증권)고 부자들의 생각을 전했다.
투자 적기로는 3분기 이후를 꼽았다. 이때쯤 경기가 바닥을 찍고 회복세에 접어들 것으로 판단하는 부자가 많다는 얘기다. 부자들은 또 코스피 지수보다 환율에 민감했다. 신문·방송에서 나오는 뉴스 중에서도 환율 관련 기사에 글로벌 경기 회복 관련 기사 다음으로 많은 관심을 보였다. “환율이 안정돼 1300원 이하로 갈 때”(우리투자증권), “급할 거 없으니 환율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린다”(하나은행) 등 환율이 안정될 때 투자에 나서겠다는 부자들도 있었다.
안정성+수익성 추천그렇다면 부자들의 재테크를 코치하는 PB들의 생각은 어떨까. PB들은 추천 상품으로 채권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었다. “한강 주변의 재개발 아파트”(하나은행) 등 부동산을 추천한 PB도 있었지만 금융회사 소속이어서인지 대부분 금융상품을 추천했다.
특히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채권의 안정성과 주식의 수익성을 결합한 CB·BW를 적극 추천했다. 외화표시채권도 유망하다고 꼽았다.
PB들은 또 주가연계증권(ELS)·주가연계펀드(ELF)·파생결합증권(DLS) 등을 추천했다. 이런 상품은 부자들의 선호 대상에선 빠진 것들이다. 그런데도 11명의 PB가 추천했다. 부자들이 ELS 등을 꺼리는 것은 지난해의 안 좋은 기억 때문이다. ELS는 주가가 일정 수준으로만 떨어지지 않으면 주가가 떨어져도 금리보다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런데 지난해 원금 보장 범위를 벗어난 수준까지 주가가 급락하면서 원금을 까먹은 ELS가 속출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을 줄인 신종 ELS가 많이 나왔다. 투자 기간 중 주가와 관계없이 만기 평가일의 주가만 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원금을 보장하는 수퍼스텝다운형이나 노녹인(No Knock-in)형 ELS가 그 예다. “원금 손실 가능성을 줄인 수퍼스텝다운형 ELS”(삼성증권), “노녹인형 ELS”(한화증권) 등에 투자하라는 게 PB들의 조언이다.
투자보다 현금을 확보하라는 PB도 꽤 있었다. 증시가 본격 상승세에 접어든 것이 아니라 베어마켓 랠리(약세장 속 상승세)에 있는 만큼 이제는 오를 만큼 올랐다는 것이다. 시장에 참여하기보다는 이후 조정을 노려 투자하라는 전략을 내놨다. “현금을 확보해 조정에 대비하되 조정이 오면 저가 매수할 수 있는 기회를 노려라”(한국투자증권), “일정 포지션의 현금을 보유하면서 주식시장에 주목하라”(우리투자증권) 등의 조언도 많았다.
부자용 절세 상품을 추천 상품으로 꼽기도 했다. “증여에 대비해 대형 우량주를 매수”(한국투자증권), “비과세 채권을 통한 실현 수익 높이기”(삼성증권), “분리과세 채권을 활용한 절세”(한화증권) 등이 그것이다. 주식이나 주식형 펀드 투자는 “대형 우량주 중심으로 분할 매수”(대우증권), “적립식 펀드를 활용한 분산 투자”(하나은행) 등 시기를 나눠 투자할 것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