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법률과경제

다툼없는 유산 분배. 변호사 못잖은 유언신탁 서비스

호사도요 2012. 2. 17. 10:21

다툼없는 유산 분배… 변호사 못잖은 유언신탁 서비스

 

유언장 작성·보관·집행까지 해줘… 부동산 신탁만 특화한 서비스도
변호사 비용보다 저렴… 보관료 年 5만원/20만원에
로펌·세무법인과 연계해 법적 효력 유지

 

서울 성동구에서 혼자 사는 이모(77)씨는 자신이 죽은 뒤 20억원대의 재산을 놓고 4명의 자녀가 다툼을 벌일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씨는 "궂은 일을 해서 돈은 제법 모았지만 자식끼리 재산을 놓고 싸운다면 헛고생한 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씨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금융회사들이 제공하는 유언신탁 서비스를 알아보는 중이다.

유언신탁(遺言信託)이란 금융회사들이 생전에 유언자의 뜻에 따라 유언장을 작성하고 보관한 다음 나중에 고객이 숨지면 유언의 집행까지 대행해 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금융회사가 알아서 유지(遺志)대로 재산을 나눠주고 법적 다툼을 방지한다.

재산의 많고 적음을 떠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매끄럽게 유산을 배분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일러스트= 오어진 기자

상속 전문 변호사 없이도 확실한 유언장 작성

유언신탁은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고객이 증인을 대동한 자리에서 유언을 남기면 금융회사 측 변호사가 이를 기록하고 서명 날인한다.

유언자의 뜻에 따라 현금이나 펀드와 같은 금융자산은 물론 부동산까지 어떻게 나눌 것인지 빈틈없이 적어둔다.

이 자리에는 공증인도 함께 참석한다.

이런 유언장 작성 서비스는 따로 상속 전문 변호사를 선임해 공증을 받는 것과 법적 효력도 동일하다.

금융회사는 유언장을 대여금고에 보관하다가 고객이 사망하면 유언대로 재산 분배를 집행한다.

유언장이 분실·위변조될 위험이 없다.

약간의 수수료를 내면 유언장을 도중에 수정할 수도 있다.

공증을 거치지 않은 유언장은 효력을 두고 법적인 시비가 벌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금융회사들은 로펌·세무법인과 업무협약을

맺어 빈틈없이 법적 효력을 유지시켜준다. 이상준 대한생명 신탁파트 과장은 "장애·이혼과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자녀에게

유산을 더 주고 싶을 때 다툼의 소지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유언장 작성에 20만원·보관료는 매년 5만원

유언신탁을 하려면 금융회사에 찾아가 상담을 받아보면 된다. 현재 우리·신한·하나·산업은행 등 일부 시중은행과 대한생명·미래에셋생명 등 보험사 및 삼성증권·하나대투증권 등 증권사가 유언신탁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별로 서비스 내용에 큰 차이는 없다.

유언장을 만들 때 수수료는 20만원 안팎이고 매년 유언장 보관료로 5만원쯤 내면 된다.

상속 전문 변호사를 통할 경우 상속액수에 따라 수백만원이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금융회사 유언신탁 서비스가 꽤 저렴한

셈이다. 생전에 상속할 재산의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상속세가 얼마나 될지에 대해서도 조언을 들을 수 있다.

시중은행 중 유언신탁 서비스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은 상속과 관련한 세금·부동산·법률에 대한 통합 컨설팅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속증여센터'를 서울 삼성동 강남PB센터와 을지로 본점에 하나씩 설치해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는 하나은행의 유언신탁 상품인 '리빙 트러스트'에 대해 상담받을 수도 있고, 가업 승계 상담도 받을 수 있다.

기업은행은 유언신탁은 아니지만 중소기업 오너들이 회사를 별 탈 없이 자식이나 지인에게 물려주는 것을 상담해주는 '가업승계 컨설팅'을 운영한다.

전담팀이 회사의 공장·기계와 같은 동산(動産)을 이전하는 방법은 물론 상속·증여세를 아낄 수 있는 노하우까지 알려준다.

부동산만 따로 신탁할 수 있어

상속 재산 중 부동산의 비중이 가장 높게 마련이다.

부동산신탁사 중에서 생보부동산신탁(교보생명삼성생명이 50%씩 출자해 만든 회사)이 부동산에 특화된 유언신탁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유언장 서비스는 물론이고 부동산을 임대하고 관리하는 것까지 대행한다.

김성태 생보부동산신탁 차장은 "자녀가 미성년이어서 직접 건물이나 토지 관리가 어려울 경우 회사가 책임지고 관리한 다음 자녀가 성년이 된 다음 상속이 이뤄지도록 계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부동산과 관련된 서비스라는 점에서 이용료가 다소 비싼 편이다.

유언신탁 상품이 대중화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미국·유럽과 달리 유언장을 남기는 문화가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사후에 재산의 집행을 맡기는 걸 찜찜해 하는 노년층도 많다.

강우신 기업은행 강남PB센터장은 "합리적인 서비스이지만 재산이 노출된다는 점을 꺼리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손진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