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로 봄 마중 여행
때 이른 남도의 봄볕이 대지의 겨울잠을 깨운다.
섬 가득 꽃 내음 흩날리는 거제도로 떠난 봄 마중 여행.
코끝에 전해오는 바람에 꽃향기가 섞이고, 두툼한 겉옷이 거추장스러워지는, 봄이다.
거제도의 봄은 그렇게 꽃바람을 타고 온다.
파도가 굽이치는 해안도로를 달리면 붉은 동백 너머로 비타민 향이 나는 수선화가 흔들거린다.
학생들이 떠난 학교에는 아이들 웃음소리 같은 매화가 꽃을 피웠다.
봄이 왔음을 알아차릴 때쯤이면 이미 저만치 앞서가는 성급한 봄을 맞으러 지금 남쪽으로 떠난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 거제도는 부산과 통영에서 들어오는 다리가 놓인 이후 이제 더는 가기 힘든 섬이 아니다.
바람의 언덕, 신선대, 자글자글 파도가 노래하는 몽돌해변을 거닐고 회 한 접시 먹고 돌아오는 일정으로는 아쉽다.
화려한 부산과 번잡해진 통영 사이에서 스치듯 지나치던 거제도엔 숨어 있는 여행지가 많다.
이름 모를 누군가 바다를 향해 쌓아 올린 하얀 성과 창밖으로 바다가 앞마당처럼 펼쳐지는 카페가 구석구석 숨어 있다.
봄볕을 온몸으로 느끼며 천천히 거닐어본 거제도 여행.
↑ 장승포에서 구조라와 학동을 거치며 거제를 시계방향으로 내려오는 드라이브 코스에서 바라본 풍경.
+ information
·1일 차공곶이 → 구조라리 → 해안도로 → 학동 몽돌해변 → 바람의 언덕, 신선대
·2일 차외포항 → 매미성 → 칠천도 → 지심도 → 장승포항
◆ TRAVEL SPOT
DAY 1
↑ 동백과 수선화가 넘실거리는 비밀의 화원, 공곶이.
공곶이-구조라리
꽃 피는 거제
예구마을의 끄트머리에 보물처럼 숨어 있는 공곶이는 80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한평생 삽과 곡괭이로만 일군 거제의 마지막 8경이다. 하늘을 덮은 200m의 동백 터널을 따라 내려오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노란 수선화가 넘실거리는 비밀의 화원이 펼쳐진다. 선을 보러 거제에 왔다가 공곶이에 반한 할아버지는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땅을 사서 수선화를 심어 현재 4만5천여 평의 자연 농원을 일구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데는 20분여 정도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만 하면 된다. 입장료가 없는 만큼 이렇다 할 편의 시설도 없다. 관광지로 조성된 곳이 아니라 그저 꽃을 사랑하는 노부부가 일군 낙원이니 봄기운 가득 만끽하고 돌아올 때 쓰레기는 되가져오는 센스를 보여주자.
↑ 알록달록 벽화길이 이어지는 구조라리.
구조라리에 있는 작은 폐교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춘당매 4그루가 나란히 운동장을 지키고 있다. 매년 입춘 즈음에 잎이 없는 마른 가지에서 꽃들이 팝콘처럼 터져 나온다. 구조라리는 한쪽은 항구, 한쪽은 하얀 백사장을 양옆으로 가진 작은 어촌이다.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진 마을 골목을 지나 한여름에도 서늘해 온갖 무서운 이야기가 댓잎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대나무 숲을 따라 올라가면 구조라성에 다다른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부는 언덕에 오르면 모래시계처럼 허리가 잘록한 구조라 마을을 조망할 수 있다.
↑ 거제도의 명물 바람의 언덕과 언덕을 지키는 풍차.
해안도로-학동 몽돌해변-바람의 언덕, 신선대
바다를 달려 바람을 느끼는 시간
거제도는 굴곡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이라 바닷가를 달리는 길은 구불구불 커브의 연속이다. 장승포에서 시작해 구조라와 학동을 차례로 거치며 거제를 시계 방향으로 내려오는 14번 국도는 거제도 여행의 핵심이다. 봄에는 붉은 동백이, 여름에는 푸른 수국이 도로 양옆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거제도에는 몽돌해변이 여럿 있다. 그중 학동 몽돌해변이 길이 1.2km로 가장 긴 몽돌해변이다. 파도가 밀려오고 나갈 때마다 경쾌하게 자글거리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흥겹다.
몽돌해변은 가만히 앉아 파도 소리를 감상하기에도 좋고 바다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걷기에도 그만이다. 해송이 커다란 가지를 터널처럼 바다 쪽으로 뻗으며 자란 곳을 시작으로 해안 절벽과 어우러지는 산책로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 몽돌해변을 지나 조금 더 달리면 바람도 쉬다 가는 바람의 언덕과 신선이 놀다 갔다는 신선대가 있다. 나무로 된 산책로를 따라 조금만 오르면 이국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풍차가 있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다. 바람의 언덕과 거의 붙어 있는 신선대를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신선이 놀다 갔을 넓은 바위 위에 서서 신선의 되어보거나 신선대 전망대에 올라 신선대와 바다 풍경을 내려다보면 된다.
DAY 2
↑ 아침 7시 활기 넘치는 외포항 위판장 너머로 일출 풍경이 내다 보인다.
외포항-매미성
거제의 삶이 묻어나는 속살
외포항은 우리나라 대구 물량의 30%를 차지하는 곳이지만 생각보다 규모는 작다. 아침 7시에 외포항 수협 위판장에 가면 활기 넘치는 경매 현장을 볼 수 있다. 겨울엔 대구, 봄에는 도다리가 경매사들의 암호 같은 수신호로 거래된다. 대구는 겨울이 제철이지만 바닷바람에 적당히 말라 수분이 조금 빠지면 더 차지고 감칠맛이 난다.
겨울과 봄이 맞닿은 계절에 방문한다면 적당히 마른 대구와 도다리쑥국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에 빠질지도 모른다. 외포항에서 조금 위쪽에 있는 시방마을에는 관광지로 알려지지 않은 매미성이 숨어 있다. 2003년 태풍 매미가 소중히 가꾼 농작물을 휩쓸어 가버리자 태풍으로부터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개인의 힘으로 담을 쌓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 것이 웅장한 성이 되었다. 외국의 어느 바닷가에 있는 수도성을 옮겨놓은 듯한 매미성은 관광지도 아니며 아직 완공되지도 않았지만 꼭 한번 들러보면 좋을 이국적인 명소다.
칠천도-지심도
나박나박 조용히 봄을 걷는 길
섬 안의 섬 칠천도는 거제도 주민들이 북적북적한 해수욕장을 피해 조용히 휴가를 즐기는 작은 섬이다. 차가 많지 않고 1시간 30분가량 바다를 보며 달리기 딱 좋은 코스라 자전거를 타려고 찾는 사람이 많다. 2013년 개관한 칠천량해전공원은 언덕 위에 위치해 바다 위 양식장과 건너편 거제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번잡한 곳을 피해 거제도의 비경을 즐기고 싶다면 칠천도가 제격이다.
장승포항에서 배로 20분이면 닿는 지심도는 섬의 60% 이상이 동백으로 뒤덮여 있어 동백섬이라고도 불린다. 배에서 내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길을 오르면 마을을 지나고 시야가 확 트이는 활주로가 나오는데 그 활주로부터 해안 전망대로 향하는 길의 동백 터널이 가장 아름답다. 동백은 1월부터 4월까지 피고 지고를 반복하다 기온이 오르는 3월에 만개한다. 겨우내 선연한 붉은빛을 머금고 있다가 화려하게 피어난 동백은 나무에서 시들지 않고 고고하게 그대로 툭 떨어져 붉은 꽃길을 만든다.
◆ TRAVEL STAY
거제의 푸른 바다를 곁에 둔 숙소
↑ 이국적인 분위기의 머그학동 펜션.
머그학동
학동 몽돌해변 안쪽 펜션들이 이어지는 길목에 하얀 갤러리처럼 생긴 카페 겸 펜션 머그학동이 자리 잡고 있다.
2013년 올해의 건축 베스트 7에 선정된 만큼 구석구석 둘러볼수록 감탄이 나오는 디자인이다.
필요에 따라 건물 내부와 외부가 통할 수 있도록 담장을 밀어 열고 닫을 수 있게 설계했고 카페와 펜션 사이에는 하늘을
담은 연못이 일렁인다.
1층 객실에는 독립된 마당이 있어 조용히 휴식을 취하기 좋다.
위치
거제시 동부면 학동3길 4 | 문의: 070-8873-3092 | 가격: 비수기 5만~10만원, 성수기 7만~15만원
↑ 소나무와 야생초가 어우러진 한국식 정원이 돋보이는 소낭구펜션.
소낭구펜션
높은 언덕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소낭구펜션의 '소낭구'는 소나무의 사투리로 한국관광공사가 인증한 '우수한옥'이다.
소낭구펜션 대표는 버려진 선산을 25년 동안 가꿔 무릉도원 같은 정원과 펜션을 만들었다.
한옥은 풍수와 지리를 고려해 창밖 풍경까지도 집의 일부가 된다.
이른 아침 발아래 깔린 안개와 소나무와 야생초가 잘 조성된 정원을 산책하면 단순한 펜션이 아니라 한 폭의 수묵화 속을 걷는 듯하다.
위치
거제시 일운면 옥림리 146-7 | 문의: 010-3382-2935 | 가격: 12평 주중 7만원·주말 12만원, 17평 주중 11만원·주말 17만원
↑ 망치몽돌해수욕장이 내다보이는 체르니펜션.
체르니펜션
외도와 망치몽돌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 위에 모던한 체르니펜션이 자리한다.
모든 객실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스파가 있고 오존 살균 서비스와 고온 스팀 살균 서비스를 제공해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이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넓은 나무 데크와 잔디밭, 바다를 바라보는 그네의자도 있어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기 좋은 곳이다.
위치
거제시 일운면 망치리 산 32-3 | 문의: 010-7100-1354 | 가격: 침대형 원룸 비수기 주말 20만원·성수기 주말 23만원,
복층형 원룸 비수기 주말 26만원·성수기 29만원
↑ 테라스가 있는 룸에서는 노천욕을 즐길 수 있는 포브릿지펜션.
포브릿지펜션
망치몽돌해수욕장 옆 갤러리 같기도 하고 고급 주택 같기도 한 포브릿지펜션이 있다.
객실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바다에는 외도, 내도, 윤돌섬이 나란히 풍경을 만든다.
아침에는 말간 해가, 저녁에는 달이 세 개의 섬 가운데에서 떠오른다.
테라스가 있는 룸에서는 바다를 바라보며 노천욕도 할 수 있다.
꽃 가꾸는 걸 좋아하는 주인장 덕에 넓은 마당과 펜션 곳곳에 꽃 내음이 가득하다.
위치
거제시 일운면 망치리 442-7 | 문의: 010-9960-7221 | 가격: 원룸형 비수기 주말 18만~21만원·성수기 주말 25만~29만원.
복층형 비수기 주말 30만원·성수기 주말 35만원
◆ TRAVEL FOOD
꼭 맛봐야 할 거제의 맛
↑ 해녀가 직접 잡은 멍게가 아낌없이 들어있는 멍게비빔밥.
해녀식당
학동 몽돌해변을 따라 횟집이 쭉 늘어서 있다.
그중 한 곳인 해녀식당은 시어머니가 해녀라 여름엔 소라, 전복, 멍게를 직접 잡아온다.
배에서 직접 사 온 자연산 회와 약을 쓰지 않은 해수를 아침저녁으로 갈아주는 수족관이 신선한 맛의 비결이다.
식사 메뉴에는 매운탕이 기본으로 제공돼 저렴한 가격에 맛있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도다리, 볼락, 줄돔(돌돔), 열기 등 그때그때 철에 따라 달라지는 생선구이는 거제도의 계절을 맛으로 즐길 수 있는 메뉴다.
위치
거제시 동부면 학동6길 24 | 문의: 055-635-9232 | 가격: 멍게비빔밥·생선구이 1만원씩, 해녀스페셜(3인) 15만원
충남식당
거제도에서 가장 큰 고현중앙시장 좁은 골목 안에 36년 된 내장국밥집이 있다.
식사 시간이 조금 지났는데도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커다란 가마솥에 하얗게 피어나는 연기를 보며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진하게 우려낸 사골 국물과 사장님만의 비법으로 만든 짭조름한 양념이 국밥 그릇을 기울여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다
먹게 한다.
위치
거제시 거제중앙로 1883-2 | 문의: 055-632-1332 | 가격: 내장국밥·순대국밥 7000원씩
↑ 만과 클라라의 바리스타이자 주인장이 직접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
슈만과 클라라
칠천교를 건너 바로 왼쪽에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마주한 슈만과 클라라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는 핸드드립
카페다.
예술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주인이 정성 들여 내려주는 커피와 24인치 우퍼에서 풍부한 저음으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과 창밖의 잔잔한 바다는 독일의 어느 카페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경주에 있는 슈만과 클라라 본점에서 직접 핸드드립을 배우고 원두도 본점에서 가지고 온다.
위치
거제시 하청면 어온4길 32 | 문의: 055-633-9198 | 가격: 레어 치즈 케이크 6000원, 허브티 6500원, 드립커피 8000원
↑ 온실 속 꽃향기가 가득한 카페, 애빈하우스
애빈하우스
장승포항이 넓게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있는 애빈하우스는 지심도에서 나와 차 한잔하러 들르면 좋다.
애빈하우스는 일반 카페가 아니고 애광원에서 운영하는 지적 장애인들의 공동체 생활공간이다.
창가에 있는 예쁜 화분부터 수준급의 빵까지 모두 애광원우들이 직접 가꾸고 만든 것들이다.
꽃향기가 가득한 온실 속 카페에서 거제도 특산물인 상큼한 유자주스를 마시며 내려다보는 바다 전망은 거제도 최고의
풍광이다.
위치
거제시 장승포동 521-86 | 문의: 055-681-7524 | 가격: 유자빵 1000원, 유자주스 7000원
기획 / 전수희 기자 | 글과 사진 / 조혜원(여행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