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생활

구례 산수유 마을

호사도요 2015. 4. 3. 19:11

구례 산수유 마을

 


올해 메뉴는 섬진강 벚굴과 산수유 막걸리…

노란 꽃 아래서
산수유 꽃말… 영원불멸의 사랑을 생각한다

 

花開昨夜雨 (화개작야우)요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花落今朝風 (화락금조풍)이라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졌구나

可憐一春事 (가련일춘사)가

가련하다 한 봄의 일이여

往來風雨中 (왕래풍우중)이라

비바람 속에서 왔다가는구나(조선 중기 송한필의 시에서)

꽃은 피어 아름답지만 지니 더욱 아름답다. 남자들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지기 때문이다.

그 꽃이 남도(南道)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봄철 흩날리는 꽃잎 아래서 술 한잔의 풍류를 꿈꾸며 길을 나섰다가, 꽃 대신 사람 구경·차 구경만 실컷 하다 돌아오길 수년째. 그래도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조바심이 난다. 한반도의 봄꽃은 남도를 넉넉히 품고 도는 섬진강을 따라 올라오며 만개(滿開)한다. 전남 광양에는 매화가 있고, 경남 하동에는 벚꽃이 있지만, 이번에는 "남자에게 참 좋은" 꽃이 보고 싶어졌다. 겨우내 언 강물이 녹는 소리를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 보기만 해도 참 좋은 꽃이 거기 있었다.

남도의 긴 강을 빠져나오니 화국(花國)이었다. 산의 밑바닥이 노래졌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전남 구례군 산동면의 마을들은 통칭 '산수유 마을'이라 불린다. 일교차가 심한 해발 200~500m 높이의 산비탈에 물기가 많고 햇볕이 잘 드는 곳이라 산수유가 자라기에 최적의 땅이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상위 마을이 가장 유명하고, 현천마을은 저수지를 끼고 핀 산수유꽃의 절경으로 알려졌다. 이 마을들 곳곳에 심어진 산수유나무에서 피는 꽃이 봄이면 지리산의 아랫도리를 노랗게 물들인다.

시골 마을의 넉넉한 인심처럼 낮은 돌담을 넘나드는 건 오직 산수유꽃이 달린 가지들뿐이다. 가지마다 20~30개의 작은 꽃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엄마 손을 잡은 아이가 "노란 솜사탕이 달렸다"고 외친다. 이 노란 꽃들이 가을이면 살이 통통하게 오른 붉은 열매로 바뀐다. 어느 식품회사 사장이 "남자에게 참 좋은데,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말하던 바로 그 열매다. 간과 신장, 방광을 튼튼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고, 술도 빚고, 엑기스를 뽑아 먹는다.

 
마을 어귀에서 작년에 수확한 산수유 열매로 만든 술을 파는 할머니가 다짜고짜 손을 덥석 잡는다. "아이고 총각, 이 술 한잔 마시고 가 봐." 이 마을에선 나이에 상관없이 남자라면 누구나 총각이 되고 만다. 술 한잔 마시고, 개천을 따라 걷다 보니 대음마을에 다다른다. 이곳에선 산수유를 노래한 시들이 빼곡히 적힌 돌담길이 눈에 들어온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홍준경(61) 시인의 시다. 돌담 한구석에 "차 값은 무료입니다. 이미 꽃이 지불했으니까요"라고 적힌 글귀와 화살표가 보인다. 따라가니 넓은 뜰에 산수유꽃이 흐드러진 시인의 집이 나온다. 노란색 티셔츠에 중절모를 삐뚜로 걸친 시인이 웃으면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넨다.

 

산수유꽃이 피는 철이면 그의 집 대문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린다. 전국의 벗들이 온갖 진미와 함께 온다. 올해의 메뉴는 섬진강 벚굴(강에서 나는 굴). 알이 굵은 굴 몇 점을 석쇠에 올려 굽더니 이내 산수유 막걸리와 함께 권한다. 벚꽃이 피는 철에 가장 맛있어서 벚굴인데, 벗과 마주 앉아 먹으니 꿀맛이다.

막걸리 한 잔 들이켠 시인의 입에서 '구라'가 술술 흘러나온다. "산수유가 우리나라 요강의 역사를 바꾼 걸 알고 있소?" 때는 6·25 전쟁 직후. 전쟁통에 놋쇠가 동나는 바람에 자기로 된 요강이 나오던 시절이다. "자기 요강이 산동 사람들의 소변 줄기를 버텨내지 못하는 거라. 보다 못한 이 마을 시인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소. 그걸 본 이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스테인리스로 된 요강을 만들라 했다 하오." 뜰 안에 폭소가 터진다. 화장실에 들어가니 폭포가 쏟아진다. 산수유에 취해 있는 사이 해가 저문다. 시인이 알려준다. "산수유의 꽃말은 '영원불멸의 사랑'이라오." 깊어가는 봄 밤, 노란 꽃들 아래서 불멸(不滅)에 관해 생각한다.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꽃 구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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